[추억이흐르는그곳 골목길] ⑨ 천안미나릿길·남산중앙시장

천안지역 정상숙 화가가 그린 천안남산중앙시장 골목길 스케치 작품. 사진=천안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제공
천안지역 정상숙 화가가 그린 천안남산중앙시장 골목길 스케치 작품. 사진=천안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제공
"골목길 사라지면서 덩달아 사라진 것들 많다/ 좁은 골목을 사이로 다닥다닥 키 작은 집들/ 건넛집 술 취한 가장의 코 고는 소리가/ 반쯤 열린 철 대문을 빠져나와/ 홀로된 지 오래인 과부의 홑치마 속으로 파고드는 것이며/ 비 오는 날 이웃집에서 굽는 고등어구이 냄새가/ 블록 담을 넘어와 공복 위로 스멀스멀 기어오르던 것이며/ 백내장 앓아대던 가등 아래 서로의 더운 숨결 탐하던/ 늦은 밤의 연인들 실루엣이며/ 온갖 소리의 넝쿨들 온갖 색깔 범벅의 냄새들/ 주인 몰래 몰려나와 저희끼리 희희낙락 짝짓기 하던,/ 우리들 한때 생의 자궁이었던 그곳/ 날 흐리면 지병처럼 찾아오는 것들/ 골목길 사라지면서 덩달아 사라진 것들 많다"

이재무의 시, `지병처럼 찾아오는 것들` 전문이다. 골목길 순례는 사라진 것 들을 추억하는 시간여행이자 세월의 파고에도 생존한 오늘을 만나는 특별한 기회이다. 천안의 첫 골목길 여행처는 `미나릿길`이다.

미나릿길은 천안시 중앙동주민센터 인근 800m 구간이다. 어른 두 명이 통행하면 서로 어깨가 부딪혀 비켜설 정도로 좁은 곳도 있는 미나릿길은 `벽화골목길`이다. `추억의 미나릿길 골목여행`이라는 주제로 골목마다 다른 벽화가 그려져 있다. 첫 번째 골목길 벽면에는 열두띠(12간지) 이야기, 겨울풍경과 빙하, 북극곰, 펭귄, 사슴 등이 입체사진을 찍을 수 있는 트릭아트 기법으로 만들어져 있다. 두 번째 골목길은 어린이 테마거리로 자연환경과 풍속화, 호랑이, 팬더, 거북이, 독수리, 공룡, 천사의 날개 등을 벽화로 만날 수 있다. 세 번째, 네 번째 골목길은 봄, 여름 풍광과 만화 캐릭터, 미나리, 천안의 옛 모습과 현재 모습을 표현했다. 미나릿길 골목 중간에는 사랑의 언약을 자물쇠로 꽉 채워 걸어놓는 명소도 있다. 옛 추억에 잠겨 한땀 한땀 시간을 거슬러 벽화를 감상하며 사진도 찍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흐른다.

미나릿길 투어가 끝났다면 근처 천안남산에 잠깐 올라보자. 천안시 동남구 사직동에 위치한 천안남산은 높이가 51m로 야트막하다. 조선 시대에는 천안남산을 수조산(水潮山)이라 불렀다는 기록도 있다. 천안 남산의 면적은 약 15만m². 남산 정상에는 정면 6칸·측면 2칸 규모의 정자 용주정(龍珠亭)이 세워져 있다.

천안남산은 크기는 작지만 여의주로 일컬어진다. 고려 태조 왕건이 8만 대군을 이끌고 후백제 공격을 위해 천안에 머물렀을 때 그의 곁에 있던 술사가 천안 지세를 풀이하며 동쪽 장태산은 청룡, 서쪽 월봉산은 백룡, 남쪽 주조산은 주룡, 북쪽 현 천안초 언덕은 흑룡, 중앙의 현 중앙초 언덕은 황룡으로, 다섯 마리 용이 여의주를 차지하려고 서로 싸우는 오룡쟁투의 형상으로 여의주에 해당하는 곳이 남산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계단을 올라 남산 정상에 서면 천안 도심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천안남산에서 천안 정경을 한 눈에 담았다면 천안남산 아래 남산중앙시장 골목길이 기다린다. 사람내 물씬한 남산중앙시장은 원래 남산시장, 중앙시장 각각이었다가 합쳐졌다. 중앙시장은 천안 최초의 상설 재래시장이다. 천안 중심의 시장이라는 의미에서 중앙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남산중앙시장 골목에는 신선한 농수산품, 맛있는 먹을거리가 즐비하다. 시장통에는 저렴한 가격에 한 끼를 든든히 채울 수 있는 칼국수집이 늘 북새통이다. 시장 중심가에서 실핏줄처럼 퍼진 작은 골목길은 70-80년대 풍경을 연상케 한다.

천안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김우수 사무국장은 `골목길 사진을 찍는 사람들, 줄여 `골사`라고 부르는 동아리를 만들여 몇 해 동안 주말마다 미나릿길, 남산중앙시장 시장통 등 천안의 골목길을 탐방했다. 동아리 회원들과, 때로는 혼자서 골목길을 찾아 사진 찍고 그림으로도 옮겼던 김 국장은 남산중앙시장 인근 가장 매력적인 골목 풍경으로 `3대 방앗간`을 꼽았다. 그는 "3대가 이어온 방앗간 뿐 아니라 주변 골목길 모습도 시간의 체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윤평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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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흠씨가 그린 남산중앙시장 골목길에 자리한 `3대 방앗간` 작품. 사진=천안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제공
연준흠씨가 그린 남산중앙시장 골목길에 자리한 `3대 방앗간` 작품. 사진=천안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제공
천안남산중앙시장으로 통하는 골목길은 옛스런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사진=윤평호 기자
천안남산중앙시장으로 통하는 골목길은 옛스런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사진=윤평호 기자
천안남산중앙시장 골목길에서는 삶의 활력을 느낄 수 있다. 사진=윤평호 기자
천안남산중앙시장 골목길에서는 삶의 활력을 느낄 수 있다. 사진=윤평호 기자
천안 `미나릿길`은 과거 어두운 이미지를 탈피, 벽화 골목길로 재탄생했다. 사진=윤평호 기자
천안 `미나릿길`은 과거 어두운 이미지를 탈피, 벽화 골목길로 재탄생했다. 사진=윤평호 기자
천안 `미나릿길` 골목길에서는 여러 벽화를 만날 수 있다. 사진=윤평호 기자
천안 `미나릿길` 골목길에서는 여러 벽화를 만날 수 있다. 사진=윤평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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