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집단이 모인 사회에서 갈등은 늘 생길 수밖에 없다. 이렇듯 사회적 갈등은 이상하거나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현상이다. 오히려 갈등에서 사회발전의 추진력이나 계기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갈등상황에 대한 적절한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국가 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했을 때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민대표가 참여해 숙성된 의견을 수렴하는 민주적 의사형성 과정이 있는데, 최근 진행된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가 대표적이다. 공론화 절차를 진행하면서 시민참여단이 숙의(熟議)를 거쳐 결론(재개)을 도출해 냈다. 숙의란 `깊이 생각해 논의한다`는 뜻으로, 매우 합리적이고 효과 높은 의사소통의 과정이다. 이번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 우리는 숙의민주주의를 톡톡히 체험했다. 투쟁 대신 숙의를 하고 주권자인 시민이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방식인 숙의민주주의란 새로운 가치와 의의를 찾아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하나의 정책문제가 이슈화 돼 정책의제가 되고 법률로 만들어져 집행에 들어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35개월 정도 된다. 그나마 이슈화되기까지의 복잡한 과정은 제외하고 걸리는 시간이 이렇다고 한다. 다른 나라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책문제가 이렇게 복잡성을 띠고 결정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숙의가 과연 기능을 하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숙의를 통해 입장과 견해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아테네 민주정치의 지도자였던 페리클레스는 "토론은 현명한 행동을 위해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예비행위"라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이성적 대화와 숙의 없이 입법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기원전 4-5세기 때 일들이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말부터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대의민주주의가 여러 가지 한계를 드러내면서 그 대안으로 숙의민주주의가 사회로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번 신고리 공론화 결정은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우려와 지적 속에서도 성숙된 숙의민주주의를 보여줬다. 인터넷과 SNS를 통한 시민의 참여가 활성화되는 상황에서 숙의민주주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신고리 공론화가 남긴 교훈은 `민주주의는 토론할 때 권리를 가지고 결과에 승복할 때 완성된다`는 점이다.

곽상훈 취재1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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