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간다.

마지막 친구를 떠나 보내는 것처럼, 슬픔이 다 하는 날처럼,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잠깐이라도 걸으면서 허리를 굽혔다. 빳빳한 은행잎 하나 주워 일부러 슬픔을 우겨넣고 그 틈으로 자꾸만 파고 들려고 몸과 마음을 다했다. 해마다 가을은 너무나도 짧고 나는 괜히 바쁜 척하느라 매일 바뀌는 하늘색과 나뭇잎들을 다 보듬을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다. 그렇게라도 가을과 눈맞춤하며 즐기고픈 나만의 방식을 고수했었다. 이번엔 조금 색다른 가을이었으면 했다. 유난히 아픈 소식들이 많아서 가슴을 몇 번은 쓸어내린 탓에 영혼이 치유될 기회를 엿보던 중이었다. 21일, 대전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다양한 축제가 열렸다. 대전시청에서도 북토크가 있었고 글작가와 시인, 어린이작가연대에서 어린이책 작가들이 대거 출동했다. 그들은 자신의 책을 읽어주며 아이들의 눈을 맞추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내면을 보듬어주는 작가들의 글을 읽고 만날 수 있어 행복했으리라 짐작해본다.

천안에서도 책축제가 있었다. 부스마다 책과 관련된 행사가 마련되었다. 하늘은 행사를 즐기기에 더없이 맑았다. 바로 옆 미술관에서는 야외 결혼식에 참여하는 하객들이 색색깔 풍선을 들고 다녔다. 스피커에서는 카펜터스의 음악이 흘렀다. 아이들은 저마다 페이스페인팅을 하거나 책을 들고 행사에 참여하려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야말로 축제의 장이었다.

글을 쓰는 일은 업이지만 그것을 계기로 아이들을 직접 만날 수 있어 나 또한 행복하다. 아이들과 시를 쓰고 노래하고 눈을 맞추면 가을이 가는 아쉬움이 밀릴 만큼 미세한 틈이 채워지는 만족감을 느낀다.

프로메테우스를 독수리로부터 해방시키고 신화를 디오니소스적 지혜의 전달자로 변모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음악이었다. 음악은 헤라클레스적인 힘이었다. 음악 안에는 노래가 있었고 시는 노래가 되었다. 아이들과 한 목소리로 시를 노래할 때면 목울대에 난 상처 따윈 느껴지지 않을만큼 신이 난다. 내 안에 이는 강력한 힘을 느낀다. 이쯤에서 혼자 너무 신이 나지 않게 강약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수업을 하다가 꼭 한 번은 니체나 장자의 글을 읽을 때보다 더 큰 깨우침을 얻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랬다.

"시인은 좋아요. 나쁜 시인만 아니면요."

그래서 물었다. 나쁜 시인과 좋은 시인을 어떻게 구분하느냐고.

아이들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좋은 시를 쓰면 좋은 시인이고 나쁜 시를 쓰면 나쁜 시인이예요."

우문현답이다.

유하정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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