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음과 모음 하나로 캄캄해지는 방에서

새로 돋아나지 못하는 움 말 돋는 걍

굽힌 어둠이 한 마디씩 펴지게

펴진 빛도 한 소절씩 굽히게

먼 길 걸어온 꽃송이 송이도

그날 피어나거나 그냥 오므린다

아득히 녹는 것을 얼어붙게 만들고

제다 멈춘 것을 죄다 닫히거나 가만히 열리고

말없는 말을 삼키며 얼음꽃 같이 슬어가는 당신

단단한 벽을 들어가 안으로 잠그고 있어

물방울같이 커지다가

혹, 우주같이 작아지다 사라지는 걸

길고 예리한 혀를 내밀면서

이른 아침 해를 돌리고 있는

무심코 갈라진 새싹에서 보고 말았네

꽃이 피고 지는 그 하나도 나사가 조여지고 풀리는 그런 작용과 이치는 아닐까. 저 지구 반대편에서 나비 하나 작고 여린 날개 짓 들썩일 때마다 그것은 반대편 지구로 폭풍이 되어 밀려오는 것. 이른 아침에 피어나는 여린 새싹 한 자락도 사실은 해를 돌리고 우주로 나아가는 문턱을 넘는 것. 그러고 보면 꽃잎이 열리는 그 순간은 참으로 곡진한 생의 몸부림인 셈. 그 안의 이치는 참으로 고요하고 오묘해서. 세상의 모든 생명은 물방울같이 커지다가 혹, 우주같이 작아지다 사라지느니. 그것은 생명이 간직한 모질디 모진 역설이다. 오. 그걸, 길고 예리한 혀를 내밀며 이른 아침 해 맞이하는 새싹 속에서 발견하는 시인의 예리한 눈이라니.

그러니 그대 생을 품고 가며 흔들리는 꽃잎을 걍(그냥) 감추지는 마시라. 이 세상의 눈동자 제다(모두) 별빛을 향해 열려 있는 법. 작은 손을 펴보면 물방울 하나가 지구를 밀고 가는 이치. 손바닥을 닫고 보면 우주가 다시 꽃잎 속으로 스며드는 이법인 것을. 내가 그대 향해 닫힌 꽃잎을 여는 것처럼. 굽힌 어둠이 한 마디씩 펴지게 하고, 또 펴진 빛도 한 소절씩 굽히게 하는 것. 오. 작은 나사 하나를 돌리며 깨닫는 이 곡진한 생의 이법이여.

김완하 시인·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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