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렀던 나뭇잎들이 계절을 따라 색깔의 옷을 입었다. 설익었던 열매들도 어느 새 탐스럽게 익어간다. 우리 일상에서 매일 만나는 얼굴은 같을지라도 계절은 어김없이 또 다른 열매를 맺고 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우리 삶에는 어느 새 열매보다는 꽃을 선호하는 경향이 생긴 것 같다. 열매보다는 꽃이 보기에도 예쁘고 화려해 우리네 시선을 잡아끈다. 꽃이 떨어진 후에야 열매가 자라는데, 사람들은 열매를 기다릴 여유가 없어진 것일까? 아님 꽃이 주는 화려함과 자유로움에 빠져 열매를 잊어버린 것일까?

우리 시대 열매가 가장 아쉬운 곳이 가정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인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 못지않게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소중히 가꾸어왔다. 어떤 이데올로기나 신념을 뛰어넘어 가족은 여전히 우리 삶의 버팀목이자 사회의 기초로 자리한다. 어떤 형태의 가족이든 그 안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고 미래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도 출산도 모두 선택으로 받아들이면서 곧 다가올 미래에 애써 눈을 감고 있다.

최근 통계청 보도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출생아 수는 41만 명이다. 이는 2000년의 64만 명에서 크게 떨어진 수치이다. 두 사람이 결혼하면 두 명 이상의 아이를 낳아야 인구가 유지되는데, 여러 이유로 인해 합계출산율이 1.17명으로 줄었다. 게다가 미래학자들은 앞으로 8년 뒤엔 결혼을 해야 할 30대 인구 중 절반이상이 미혼 남녀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선택으로 간주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요즘 같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선 취업난으로 직장을 얻지 못하거나, 결혼을 준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여성들은 학력이 높아지고 취업이 늘면서 결혼보다는 일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젊은이들의 이런 선택은 변화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이거나 일을 통해 자기발전을 추구하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이유만으로 충분한 것일까?

잠시 자연으로 눈을 돌려보자. 산과 들에 핀 꽃은 누가 봐도 참 예쁘고 아름답다. 각기 다른 모양과 색을 지녔을지라도 꽃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독특한 개성과 아름다움을 잘 드러낸다. 그러나 꽃이 진정한 생명력을 얻기 위해선 자신을 비우고 떨어져 열매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오랜 시간 비바람과 더위, 폭풍을 견딘 후 가을이 되어서야 비로소 새로운 꽃을 잉태한 씨앗을 내놓는다. 꽃은 그 자체로 열매 맺음의 시작인 셈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결혼하기 전에는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주위의 간섭을 크게 받지 않는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자녀를 키우다 보면 삶이 참 고단하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그 고단함 속에서 자녀가 성장해가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고, 때로 폭풍전야 같은 갈등을 파도 타듯 넘으면서 가족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절제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도 모르게 속이 단단해진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사회적 불의 앞에 격정적인 분노도 쏟아낼 수 있다. 나 자신만을 위한 삶은 어쩌면 조금 허전하지 않을까!

결혼과 출산이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믿는 젊은이들도 나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하기 힘든 이유가 경제적 상황이라면 그것에 너무 무력해지지 말고 희망을 갖고 힘을 내라고 말하고 싶다. 일하는 젊은 여성들의 경우 임신과 출산은 더 이상 미안함이나 죄책감을 가질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를 이어갈 축복으로 받아들이자. 일하면서 아이를 돌보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다. 슈퍼우먼이 되기보다는 보살핌의 가치를 드러내어 함께 공존하는 법을 찾는 것이 중요한 때다. 꽃은 자신을 떨구어 열매가 될 때 진정한 생명력을 얻는다. 열매는 누구에게나 알찬 결실과 풍성함을 안겨준다. 열매가 기다려지는 이 가을에 우리는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가정의 아름다운 열매는 자녀라는 사실을 젊은이들이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다. 꽃 보다 열매를 바라며….

박미은 한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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