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급 시각 장애를 갖고 있는 하씨가 볼 수 있는 거리는 4m 남짓. 마라토너 보폭을 고려할 때 세걸음 앞조차 보이지 않는 셈이다.
그는 "시야가 없기 때문에 몇 킬로미터 지점인지 잘 알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핸디캡"이라고 말한다. 완급조절 없이 레이스 내내 긴장감을 유지해야 해 다른 선수들에 비해 피로도가 높다. 다른 길로 들어선 적도 허다하다고 한다.
10년 전쯤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부인 손영희씨가 눈이 돼 주었다. 그러나 하씨는 곧 마라톤의 매력에 푹 빠져 틈만 나면 달렸고 손씨가 보조를 맞추기 힘들게 됐다.
"갑자기 시력이 안 좋아지다가 중학교 3학년 때 시력을 거의 잃었다."
1963년 연기 전의면에서 태어난 하씨는 학업까지 포기했던 좌절의 시기를 이렇게 말했다. 방황을 극복케 한 건 신앙의 힘이었고 마라톤의 세계로 이끈 것도 평소 친분이 깊던 이성영 목사 덕이다.
하씨는 "형과 함께 시작한 음료수 도매업을 해오다 건강을 위해 달리기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목사님의 말에 시작했다.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건 걷고 뛰는 것뿐이라 저녁만 먹고 나면 나가 달렸다"고 말했다.
이날 하씨는 웬만한 사람들은 뛰기 힘든 하프코스를 1시간 37분9초의 기록으로 완주했다.
그는 "결승선을 통과할 때 목표를 이뤘다는 뿌듯한 성취감이 크다. 나같은 사람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결코 끊기 힘든 중독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씨의 마라톤 사랑은 가족들에게까지 전염됐다. 이날 근무가 있다는 아들을 빼고 부인 손씨는 10㎞ 코스를, 딸 하태희씨는 5㎞ 코스를 완주했다.
이용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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