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하문호씨가 21일 충청마라톤에 참가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부인 손영희씨, 하씨, 이성영 목사, 이대근씨. 이용민 기자
시각장애인 하문호씨가 21일 충청마라톤에 참가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부인 손영희씨, 하씨, 이성영 목사, 이대근씨. 이용민 기자
21일 열린 충청마라톤에서 청명한 가을 날씨를 즐기는 마라토너들 속에 사이클 선수 한 명이 눈에 띄였다. 시각장애 마라토너 하문호씨를 인도하기 위한 이대근씨였다.

1급 시각 장애를 갖고 있는 하씨가 볼 수 있는 거리는 4m 남짓. 마라토너 보폭을 고려할 때 세걸음 앞조차 보이지 않는 셈이다.

그는 "시야가 없기 때문에 몇 킬로미터 지점인지 잘 알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핸디캡"이라고 말한다. 완급조절 없이 레이스 내내 긴장감을 유지해야 해 다른 선수들에 비해 피로도가 높다. 다른 길로 들어선 적도 허다하다고 한다.

10년 전쯤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부인 손영희씨가 눈이 돼 주었다. 그러나 하씨는 곧 마라톤의 매력에 푹 빠져 틈만 나면 달렸고 손씨가 보조를 맞추기 힘들게 됐다.

"갑자기 시력이 안 좋아지다가 중학교 3학년 때 시력을 거의 잃었다."

1963년 연기 전의면에서 태어난 하씨는 학업까지 포기했던 좌절의 시기를 이렇게 말했다. 방황을 극복케 한 건 신앙의 힘이었고 마라톤의 세계로 이끈 것도 평소 친분이 깊던 이성영 목사 덕이다.

하씨는 "형과 함께 시작한 음료수 도매업을 해오다 건강을 위해 달리기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목사님의 말에 시작했다.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건 걷고 뛰는 것뿐이라 저녁만 먹고 나면 나가 달렸다"고 말했다.

이날 하씨는 웬만한 사람들은 뛰기 힘든 하프코스를 1시간 37분9초의 기록으로 완주했다.

그는 "결승선을 통과할 때 목표를 이뤘다는 뿌듯한 성취감이 크다. 나같은 사람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결코 끊기 힘든 중독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씨의 마라톤 사랑은 가족들에게까지 전염됐다. 이날 근무가 있다는 아들을 빼고 부인 손씨는 10㎞ 코스를, 딸 하태희씨는 5㎞ 코스를 완주했다.

이용민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