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피스 등 반(反)원자력단체가 강성인 유럽의 독일 등 일부 국가들이 탈원전 정책을 결정했지만 그래도 세계의 대세는 원자력발전소의 확장에 무게가 실린다. 특히 중국, 인도 등 신흥개발국가가 앞장서고 중동과 동유럽, 미국 등이 원전정책의 확장에 동참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체코, 그리고 폴란드 및 핀란드 등에서 구체적인 건설일정을 확정하고 수입하고자 하는 대상국을 방문하거나 초청해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불과 지난 달, 원전기술을 소유한 몇 개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책임자 면담에 비중 있는 인사들을 파견해 기술적 설명은 물론 적극적인 로비를 펼치는 형태이었으나, 우리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산업통상자원부 서기관(과장급)을 파견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내년에 대형원자력발전소 2기를 국제입찰에 부칠 예정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한국 기술의 소형원전 도입에 이미 계약에 버금가는 이해각서를 체결하고 10만㎾급의 2기를 사우디 안에 건설하기로 하고 한국원자력연구원과 공동설계를 진행 중에 있다. 이를 위해 40여 명의 사우디아라비아 엔지니어들이 대전에 와 설계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두 나라는 소형원전 건설에 합의한 상태라 대형원전의 입찰에 한국이 실질적으로 가장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경우는 한국의 초청으로 5일간 한국을 방문하고 귀국한 체코 대표단을 들 수 있다. 그동안 실무적이고 기술적인 사항을 확인한 체코 특사가 정부의 책임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면담 없이 바로 귀국했다 한다. 물론 국회 국정감사 기간이라 장관이 바쁘다는 것은 이해되지만 이런 자세로 수출의 길을 연다는 것은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다. 어느 나라이건 원자력발전소 수출에는 그 국가의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이나 수상의 각별한 관심사항이며 이와 함께 대통령이 직접 외교적 노력으로 해당 국가를 방문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과거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의 원전 입찰 시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각국의 대통령 또는 수상들이 방문했고 필승을 위해 최선을 다했음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다. 대통령이 현지를 방문해도 될까 말까 한 수주경쟁에 한국을 방문한 특사를 장관이 접견조차 하지 않은 정부의 태도는 아예 수출을 미리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는 탈원전 기조를 택하고 있는 현 정부가 수출을 위한 최소한의 흉내만 내고 있는 느낌이다. 탈원전 기조를 견지하지만 수출은 적극 지원하겠다던 대통령의 언급은 실제 상황에서는 어두운 면들이 드러나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탈원전을 하겠다는 나라에 어느 국가가 그 나라에서 원전을 구매할 수 있겠는가" 하는 관점에서 미리 답을 알아 스스로 처리하고 있지나 않는지 궁금하다.

이뿐이겠는가. 한국전력공사 등 관련기관에서도 체코 특사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기사가 눈길을 끈다. 굳이 만나서 정부의 눈총을 받느니보다는 아예 적당한 이유를 들어 만나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다만 슈틀러 체코 특사는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을 만났다는 것과 한국 원전에 대해 허심탄회하고 다양한 대화를 나누었을 가능성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초청으로 온 대표를 주무장관이 만나주지 않은 것은 최소한의 외교적 예의와도 연관된다.

체코는 2035년까지 100만㎾의 원전 4기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라 내년에 입찰제안서를 발급하고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다는 일정을 가지고 있다. 특히 체코는 우리가 UAE에 수출한 원전 모델을 선호하고 있어 그동안 공들여 온 국가이다. 특히 최근에 우리의 140만㎾의 EU-APR이 EU의 규제기관에 설계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큰 호재로 작용하고 있던 터이다. 이 시점에 이번 한국을 방문한 체코의 슈틀러 특사의 방한에 대한 국내의 대책이 여러 곳에 아쉬움을 남겼다. 현재 수출 경쟁국은 중국, 러시아, 프랑스, 일본 및 미국 등이며 이들 국가들은 예비입찰문서를 제출한 상태이다. 체코의 특사가 귀국해 한국 현지답사 출장결과보고서를 어떻게 정리할지가 궁금하다.

<이익환 전 한전원자력연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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