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아이들이 어렸을 때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패키지여행이 아니어서 어린 아들딸의 다리 상태를 걱정하며 낯선 파리 시내 길을 하염없이 걸었던 게 가장 먼저 떠오른다. 100년은 족히 넘었다는 좁은 튜브 같은 파리지하철을 타고 지상으로 올라와 한참 걸어서 찾아간 곳 중 하나는 에펠탑이다. 사진처럼 하늘을 송곳처럼 찌를 듯 솟아 있는 에펠탑에는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긴 행렬이 줄지어 있는 바람에 그 앞 너른 공원에 앉아 안테나를 포함한 높이 324m의 탑을 감상하다 발길을 돌린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1889년 완공돼 128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에펠탑은 그러나 처음에는 영구히 세워둘 예정은 아니었다고 한다. 당시 파리만국박람회를 기념해 건축가 구스타브 에펠이 설계한 에펠탑은 철제로만 구축된 탓에 흉물이라는 힐난을 사방에서 들어야 했다. 그래서 20년만 세워둔 뒤 철거키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흉측한 탑이 파리에 세워졌다는 소식에 프랑스 타 지방은 물론 인접국에서 관광객들이 파리로 몰려들었고, 장삼이사(張三李四)의 갖은 언설에 문학·미술 등의 기록이 더해지면서 세계적인 명물이 됐다. 여기에 젊은 시절 영국 유학을 갔던 마하트마 간디가 귀국길에 들러 에펠탑을 보고는 "아름다운 파리의 경관을 해치는 흉물"이라고 한 비판이 에펠탑에 관한 스토리를 되레 풍부하게 하면서 더욱 유명해지게 됐다.

대전에서도 상징타워를 세우자는 여론이 일고 있다. 에펠탑만큼은 아니어도 국내외에서 유명세를 얻을 랜드마크로 손색이 없는 탑을 세우자는 것이다. 대전엑스포93 시절 세워진 한빛탑이 있지만, 평지에 건립된 데다 작아 이제는 대전 시민들조차 잘 찾지 않는 곳이 됐다. 대전 하면 쉽게 떠올릴 만한 상징물이 없는 상황에서 상징타워를 건립하자는 여론은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만하다.

과거 근대화 시기 경부·호남선 철도가 교차해 교통도시로 불리면서 물산유통의 전국적인 중간거점이 되어 성장했던 대전은 고속도로망 확대·KTX 고속열차 개통 등 교통이 더 편리해지고 첨단화되면서 역설적이게도 그 위상이 축소되는 현상을 겪고 있다.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있어서 과학도시로도 불리지만 체감할 만큼 규모 있는 산업화가 대전에서 이뤄지지 않는다고 시민들은 생각한다. 인구 155만까지 성장했지만 세종시 출범으로 5년간 4만 명이 넘는 인구가 빠져나가면서 도시 기능이 쇠퇴한다는 말도 나오는 실정이다. 게다가 관광객이 몰리는 관광도시는 더더욱 아니다.

대형 타워 건립으로 도시 지명도가 올라가고 관광객이 늘어난 다른 도시 사례도 이런 여론을 뒷받침한다. 서울의 남산 꼭대기에 있는 N서울타워, 부산 용두산공원에 있는 부산타워, 대구 두류공원에 있는 83타워 등등이 대표적이다. 외국의 비슷한 케이스는 일일이 거명하기 힘들 정도로 숱하다.

이에 따라 대전시개발위원회가 앞장서고 대전시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대전시는 2년 뒤인 2019년이 대전부(大田府)에서 대전시(大田市)로 승격한 70주년을 되는 해인 점을 고려해 이때에 건립지점, 디자인 정도는 확정해 발표하겠다는 복안이다. 이런 가운데 대전에서는 과거 시민들의 명소였던 보문산이 상징타워 건립 후보지로 거론된다. 대전 중구 원도심과 가깝고 전국에서 오는 관람객이 많은 오월드 등이 인접한 점을 고려해, 곤돌라와 함께 상징타워를 설치하면 탐방객 증가도 꾀할 수 있으리라고 예견된다. 반면 동구에서는 보문산보다 더 높고, 대청호는 물론 충북 옥천까지 보이는 식장산에 건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곳에 세워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 있지만, 어떤 형태에 어떤 지향점을 가질 것인지를 결론내기도 전에 장소부터 결정하자고 고집하는 것은 원하는 효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겨우 이제 논의를 시작하는 단계다. 다양한 측면에서 세밀한 검토와 연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탑만 세운다고 우리가 원하는 효과가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탑 자체에 냉담한 견해도 있다. 수많은 주장과 요구를 긍정적이고 풍부한 스토리로 담아내는 지혜로운 태도가 절실한 때다. 생각해보면 이런 태도는 상징타워 논의에만 국한될 일이겠는가.

류용규 편집부국장 겸 취재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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