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 마더, 바람이 머무는 자리, 죄많은 소녀

바람이머무는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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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지난 12일 개막했다. 폐막식을 치르는 오는 21일까지 열리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는 월드프리미어 부문 100편(장편 76편·단편 24편)을 비롯해 인터내셔널 프리미어 부문 29편(장편 25편·단편 5편) 등 모두 75개국에서 298편의 작품이 초청됐다.

개막작은 배우 문근영이 출연한 한국영화 `유리정원`(신수원 감독)이고 폐막작은 대만영화 `상애상친`(相愛相親·실비아 창 감독)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은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영화 마더(Mother!)가 첫 선을 보였다. 섬세한 가족의 정서를 그려 호평을 받은 멕시코 영화 `바람이 머무는 자리`와 뉴커런츠 경쟁부문에 오른 한국영화 `죄 많은 소녀`(김의석 감독)도 주목을 받은 영화다.

△마더(미국·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전작 `노아`처럼 이번 영화 `마더`도 성경의 창세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마더는 심리 스릴러 영화다. 평범한 연인의 이야기 같은 영화는 어느 순간 현실인지 환각인지 알 수 없는 경계를 오가고, 이를 보는 관객들조차 혼란스러워진다. 어느 시골의 한 주택. 집 주위가 숲으로 둘러싸인 이 곳은 부부밖에 찾아올 사람이 없는 듯하다. 평화롭던 부부의 집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이 찾아온다. 낯선 이들의 방문이 불편하기만 하던 중 손님의 짐에서 남편의 사진을 발견하게 된 아내는 이들을 환대하는 남편의 모습이 의심스럽기만 하고, 그들의 무례한 행동은 갈수록 극에 달한다. 계속되는 손님들의 방문과 집안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은 아내를 더욱 불안하게 하는데 도대체 이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영화 곳곳에 성경적인 상징을 많이 넣었다. 그는 관객들이 이런 의미를 찾아낼 때 느낄 재미를 위해 은유적으로 표현했다고 하지만 장면, 장면의 연결성은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다. 영화는 지구의 시작과 끝, 남자와 여자의 탄생, 부패, 인구 과잉, 종교의 탄생 등 여러 가지를 말하고 있지만 바탕은 오로지 `대자연의 시점`뿐이다. 영화는 제니퍼 로렌스와 하비에르 바르뎀의 연기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바르뎀 표정 연기는 영화를 곱씹을수록 이해를 돕는 도구가 된다.

△바람이 머무는 자리(멕시코·히메나 몬테마요르 감독)=학교 친구들과 가면 무도회를 여는 여자 아이. 아이는 다른 친구들의 익살스런 분장과 달리 미망인 분장을 하고 나온다. 훌쩍이며 파티장으로 나온 아이에게 친구들은 황당해한다. 미망인이 무엇이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아이는 "슬픔을 극복하는 사람"이라고 답한다. 멕시코 여성 감독인 히메나 몬테마요르의 데뷔작인 이 영화는 아버지를 잃었지만 그 사실을 부정하는 한 가족의 일상을 그렸다.

카르멘은 남편을 기다리며 위태로운 하루하루를 이어나간다. 아들 다니엘은 환영에 사로잡히고, 큰 딸인 아나는 성인으로 살기를 거부한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위태로운 하루를 이어나가고, 딸은 사춘기 아이처럼 굴며, 아들은 환영에 사로잡힌다. 상실의 고통에서 허우적대던 이들은 서로를 위하며 어떻게든 삶을 이어나간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아버지의 부재를 죽음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족을 팽개치고 집을 떠난 이로 그려 가족의 고통을 그리는 듯하다. 영화는 아버지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로 `상실`이 가족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을 그렸다. 영화는 빼어난 촬영과 시대상을 반영하는 꼼꼼한 프로덕션 디자인이 돋보이는 이 영화는 한 가족의 상실의 아픔과 그 회복의 과정을 담담하게 바라본다.

△죄 많은 소녀(한국·김의석 감독)=경쟁부문인 뉴커런츠에 초대된 한국영화. 어느 날 한 여학생이 실종된다. 투신으로 추정되지만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고, 유서나 명확한 증거도 나오지 않아 자살인지 타살인지 단정지을 수 없는 상태. 여학생이 실종된 밤, 함께 있었던 영희는 여학생의 죽음을 부추긴 것으로 의심받게 된다. 영화는 사건에 대한 책임을 타인에게 미루는 `위험한 대중`을 그린다. 또래집단의 생각이 행동에 영향을 주는 고교생들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타인에게 지속적으로 탓을 돌린다.

마녀사냥에 몰리게 된 영희는 친구의 죽음에 방조 혹은 동조했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심지어 구타까지 당한다. 그는 친구의 자살이 애초부터 예정돼 있음을 절박하게 호소하지만 돌아오는 건 자신이 살기위해 친구의 죽음을 팔았다는 비난의 화살 뿐이다. 영희는 결국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데…. 영화는 영희의 선택 이후 또다른 집단적 광기를 보여준다. 영화 말미에 영희는 죽은 친구의 엄마에게 말한다. "친구의 죽음을 말릴 사람은 나밖에 없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난 내일 죽을 거다. 아줌마는 자살 전 나를 만났다. 그럼 내일 내가 죽은 후 어떤 말을 할지 지금부터 생각해야 할 것이다"라고. 영화는 한국 제목보다 오히려 영어 제목인 `After My Death`(애프터 마이 데스)가 영화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가해자를 응징하지 않으면 멈추지 않는 광기를 그린 영화로 부산국제영화제의 대표적 수작 가운데 하나다. 부산=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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