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비백제 567년 능사 창건 지상논단

지난 13일 부여 정림사지박물관에서 열린 `사비백제 567년 능사 창건 콜로키움` 좌담회에 참석한 각 분야 전문가들이 능사 발굴 현황과 의의, 능사 활용방안, 제언 등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백제고도문화재단 사비도성연구단 제공
지난 13일 부여 정림사지박물관에서 열린 `사비백제 567년 능사 창건 콜로키움` 좌담회에 참석한 각 분야 전문가들이 능사 발굴 현황과 의의, 능사 활용방안, 제언 등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백제고도문화재단 사비도성연구단 제공
백제역사지구 세계유산 등재 2주년이면서 올해 능사 창건 1450주년을 맞아 능사의 발굴성과 검토와 활용방안 모색을 위해 각계 전문가와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다양한 의견을 교환했다.

능사 연구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인 사역의 변천과정에 대해서는 강당을 먼저 지어 사용한 후 일탑일금당식의 가람을 조성했다는 기존의 견해와 함께 했다.

능사의 활용방안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학계의 연구성과가 대중에게 전달되지 못한 점을 지적하면서, 능사에서 행해진 제례 복원을 주문했다.

제례 거행을 통해 능사의 의미를 대중에게 널리 알림으로써 `잊혀지지 않는 능사`로 자리매김 할 수 있다고 봤다. <편집자 주>

-백제유적의 세계유산등재로 백제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는 가운데 능사창건 1450주년을 맞아 능사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능사 발굴의 현황과 의의에 대해 설명해달라.

△이용우 =능사는 백제왕실의 대표적인 사찰로서 백제 역사와 문화 복원을 위한 매우 중요한 사료이다. 능사 발굴은 1992년부터 2011년까지 실시해 능사의 가람배치를 확인했고, 백제금동대향로를 비롯한 수많은 유물들이 출토됐다. 군은 능사의 역사적 가치와 백제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홍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자리를 통해 능사의 변천과정과 활용방안 등에 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기를 기대한다.

△신광섭=1992년 윤무병 교수팀이 실시한 시굴조사에서 초석과 지대석 등이 확인되면서 능사의 존재가 알려졌고 그 후로 10여차례 발굴조사를 실시해 금당, 강당, 목탑, 중문, 회랑, 공방, 배수로 등 사역내의 주요 유구들이 확인됐다. 백제금동대향로와 창왕명사리감, 목간 등이 출토돼 능사가 명실공히 사비기 백제의 대표 사찰임이 밝혀졌다.

-능사는 성왕때부터 건립하기 시작했고 백제멸망과 폐사된 사찰로 알려지고 있다. 능사의 축조와 폐사시기, 사역 경관의 변화 과정이 궁금하다.

신광섭=능사는 신라와의 전투에서 전사한 성왕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추복사찰로, 성왕을 위령하기 위한 신묘로서의 성격이 짙다. 능사 건축의 시작기점은 백제 성왕의 사비천도와 함께 건립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능사는 강당지가 먼저 조성된 후에 사찰의 가람이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강당지에서는 신좌 같은 것이 확인되는데 제의의 공간으로서 성왕 재위기 조상신을 모시는 신묘로 추정된다. 이후 성왕이 죽고 위덕왕때부터 능사가 원찰의 기능을 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위덕왕은 관산성 전투의 패전으로 인해 정치적인 위기를 맞았는데 능사 조성을 통해 변화의 계기를 모색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박순발=전체 가람 조성 이전에 강당지가 먼저 조성됐다는 점은 확인됐다. 그런데 금당, 목탑, 강당의 가람이 모두 갖춰지기 이전부터를 사찰로 볼 것이냐에 대한 문제는 단정하기 어렵고 또한 건물의 선후관계는 인정되더라도 이전의 것을 종묘라고 단정 지을 근거는 없다. 동한대 이후의 종묘제도를 보면 능에 있는 것은 종묘가 아니고 원묘 혹은 능묘로 불린다. 오히려 도성 내에 종묘가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현주=능사는 많은 연구자들이 건물의 구조와 척도, 기와 분석 등을 통해 강당지 등을 중심으로 Ⅰ기나 초기건물지 단계를 설정하고 있다. 약간의 시차는 있을 수 있지만, 강당지와 공방지Ⅰ·Ⅱ 등이 목탑지, 금당지와 시기 차이가 난다는 근거가 다소 부족하다. 대배수로 내부의 사찰 건물들은 567년부터 어느 시기까지 조성되고, 그 이후 건물의 보수가 이뤄졌을 것이다.

대배수로 외부의 북편건물들은 평기와 문양 등으로 보아 내부의 사찰 건물보다 늦게 조성됐는데 공방지Ⅰ·Ⅱ 등과 건물 구조에서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에서 조성 시작 시기는 7세기를 넘어가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능사가 왕실을 위한 사찰로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능사가 지닌 성격을 설명해 달라.

△박순발=이 유적은 당초 `능산리사지`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지금도 공식적인 학술적 표기상으로는 그러한 이름을 따르고 있다. 2000년도 이후 발간된 일련의 발굴조사 보고서의 표제로 `능사`가 사용된 예가 많아지고 있다. 알려진 바로는 `능사`는 왕릉이나 황제릉원의 부속 건축으로서 그 부근에 세워진 불교사원을 지칭하는데, `능산리사지`는 백제 최초의 능사로서 다양한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부여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

△서현주=능사는 목간 뿐만아니라 특이한 문양이 찍힌 대옹 등의 존재로 보아 다른 사찰들과 달리 제사, 의례적 성격이 뚜렷하다. 이러한 유물로 보아 이 일대에서 능산리 왕릉군과 관련한 의례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능사의 폐사시기를 언제쯤으로 봐야 하나.

△신광섭=왕실의 상징까지 파괴해버리는 행위는 적국에 대한 최후의 단계에서 행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사비 점령 후 백제부흥운동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이때부터 단순한 원정 개념이 아닌 철저한 원수로서 인식한 듯하다. 따라서 백제부흥운동이 막을 내리는 663년에 목탑과 사리감을 훼손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웅진도독 부여융의 제사에 관한 기록도 사비 점령 초기 이러한 정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박순발=고고학적으로 660년과 663년의 연대를 획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단, 향로가 묻힌 정황이라든가, 목탑의 사리감을 캐낸 정황을 보면 목탑 훼손은 당군의 행위일 가능성이 높다. 향로가 묻힌 지점은 사역 내에서도 당군의 관심을 피할 수 있는 곳이었을 것이고, 660년 7월부터 9월 사이 어느 날 묻혔을 것이다. 특히 왕흥사를 비롯한 도성 내 다른 사찰은 사리감이 훼손되지 않았는데 능사 목탑지의 기둥뿌리를 뽑았다는 것은 이 사찰이 가진 특별한 의미를 보여준다. 즉 목탑 파괴행위는 백제 왕실의 명맥을 끊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정림사 평제비의 내용을 보면 660년 이미 백제는 없다는 사실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부여융의 제사도 당을 위한 제사지 백제를 위한 제사가 아니라고 본다.

-이런 능사를 어떻게 전승하고 활용하면 좋을지 설명해달라.

△신광섭= 올해는 능사 창건 1450주년이므로 향로 발굴일자인 12월 12일에 창건 기념 불교의례를 거행하는 것도 의미가 클 것으로 생각된다.

◇박순발= 대중의 관심을 촉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위해서는 능사의 백제적이고 고유한 이벤트가 수반되어야 한다. 능사의 제의에 관한 기록은 없지만, 시조 구태묘에 연 네 차례 제사를 올린 기록 등을 참고 할 때 1년에 네 번 정도 제례를 거행하는 것도 좋은 활용방안이 되겠다. 또한 그간의 학술적 성과를 토대로 음악계와 함께 백제음악에 관한 콘테스트를 개최한다면 향후 중요한 문화자산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서현주= 부여에 사시는 분들조차 금동대향로가 어디에서 나온 지 모르는 분들이 많다. 백제문화제 등을 활용, 능사의 제례를 복원해 거행한다면 능사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능사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제언을 한다면.

△서현주= 건물의 조영 단계가 층위적으로 규명되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 향후 전체적인 사역의 변화에 대한 재정리가 필요하며, 특히 기와자료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가 필요하다.

△박순발= 능사의 가치를 인식하고 대중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출토된 다양한 유물에 대해서는 차차 의미부여가 될 것이다. 능사의 경우 출토유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장소적인 의미가 부각된다. 향로의 경우 행향에 관한 의미와 사용된 향의 종류 등에 관한 세부적인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신광섭= 발굴 당시 상황이 여의치 않아 충분한 조사를 진행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금까지의 발굴성과에 대한 재정리를 통해 세밀하게 접근한다면 능사 연구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부여=한남수 기자

도움말: 백제고도문화재단 사비도성연구단

[대담 참석자]

이용우 부여군수

신광섭 울산박물관 관장

박순발 충남대학교 교수

서현주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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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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