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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史 건물 자체가 문화재급…임진왜란·일제강점기 재조명

2017-10-17기사 편집 2017-10-17 17: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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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역사문화관에 가면

첨부사진1역사관 내부
지난 2013년 구 한일은행 자리에 개관한 강경역사관은 조선시대 전국 3대 시장과 2대 포구로 명성을 날렸던 강경의 근대역사를 한 눈에 펼쳐 볼 수 있게 꾸몄다.

역사의식을 새롭게 일깨우고 강경을 역사문화 관광도시로 만들기 위한 취지로 조성됐다.

근대역사 개요관, 조선을 일본이 침략하는 과정, 일본의 만행과 수탈, 독립운동, 기독교 문화운동, 6·25와 논산 및 강경, 근대 역사보고 강경, 전재홍 박사의 1980년대 강경 사진전 등 모두 7관으로 구성됐다.

임진왜란부터 6·25전쟁 후 휴전까지 근대사 주요 연대기를 비롯해 국내 독립운동, 한국전쟁과 강경의 역사·문화재·근대건축물 등 우리 민족이 당한 고통의 역사와 독립운동의 역사 및 강경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또 근대 건축물인 구 강경 노동조합 건물과 강경중앙초등학교 강당을 비롯해 등록문화재 324호 한일은행 강경지점, 강경지역 근대역사자료와 지역 서민생활과 관련 깊은 각종도구, 생활문화 사진을 전시해 근대 강경의 모습을 의미있게 관찰 할 수 있다.

아직도 일제 강점기에나 볼법한 가옥들이 드문 드문 남아 있는 강경은 당시의 관청과 은행, 학교를 포함해 멈추어 버린 시계 바늘이라는 고적한 느낌을 준다. 조선의 서해와 남해에 풍부한 물산이 만들어낸 바다의 내음을 가득 실은 황포돛배가 유유히 비단강을 따라 올라와 닻을 내리며 긴 여정을 마무리 했던 곳이 바로 강경이다.

기록에 의하면 강경의 상권이 일본인들에게 넘어가기 시작한 시점은 1905년경으로 알려졌고 경술국치가 있던 1910년에는 강경의 거의 모든 상권이 일본인들에게 넘어가고 만다. 이때 모여든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살아야 집을 짓고 건물을 세웠는가 하면 아이들을 가르칠 학교를 세우는 과정에서 강경은 점차 근현대사 건물들이 가득히 들어서는 고장이 됐다.

강경역사관이 들어선 구 한일은행 건물은 상인들의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조선식산은행이 서울과 부산에 이어 처음으로 강경에 들어와 영업을 시작했고 해방 이후 한일은행이란 이름에서 조흥은행으로 끝내는 충청은행이라는 이름으로 간판을 줄줄이 갈아가며 100여 년 동안 묵묵히 강경의 역사와 함께 했다.

정현수 강경역사문화연구원장은 "소중한 역사 문화유산을 잘 보존해 재조명함으로써 역사를 바로 알고 우리 고장을 빛낸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교훈 삼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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