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코 톱은 스며들어 무늬를 들여다본다

먹줄을 따라 떨어지는 활엽의 허연 비늘

못 먹는 밥이라지만 집착 없는 뼛가루다

사라지는 선을 따라 촘촘히 뱉어내도

나무는 품 안에서 어금니를 꽉 깨문다

뭉쳐진 그루터기가 고집으로 맞설 땐

무른 사람에게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

흉부를 열어 전부를 탐하려 하다간

맥없이 악다구니에 곧바로 먹히고 만다

한 시간 째 생목 냄새가 팔뚝을 휘감는다

밀고 당기는 운율 속에 30년 된 오동나무가

살며시 바람 소리와 물소리를 털어낸다

쩌어억, 수만 가지 희로애락이 풀려나간다

악기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공명일까

고요한 둥근 결을 따라 정간보의 맥박이 뛴다

가야금은 우리나라 고유의 현악기. 오동나무로 만든 좁고 긴 직사각형 공명통 위에 명주실로 꼰 12 줄을 걸고, 각 줄마다 기러기발을 받쳐 놓았다. 음색이 맑고 연주 기교가 다양해 아악과 민속악에 두루 사용된다. 아악이나 정악 같은 정통 음악에 쓰이는 가야금은 풍류 가야금이라 하고. 민속악 특히 산조에 쓰이는 가야금은 산조 가야금이라 부른다. 그러니 가야금은 우리의 민족성을 매우 잘 나타내는 악기로 국악기 중에서도 으뜸이고 가장 많이 연주된다.

묵은 오동나무 베어져 제 몸을 비우고 그 안에 허공을 품어 하나의 가야금으로 탄생하는 순간. 그건 우주의 기운을 받아 태어나는 대지의 항아리. 마디마디를 저미어 절제된 심장으로 살아난다. 톱의 스밈으로 무늬가 열리고 먹줄을 따라서 깊이가 선다. 사라지는 선을 따라서 결이 생긴다. 뭉쳐진 그루터기 고집으로 맞서는 걸 보면서 사람의 도리를 생각한다. 오랫동안 생목의 냄새가 팔뚝을 휘감고, 밀고 당기는 흐름 속에 30년 된 오동이 밤소리 물소리를 털어낸다. 이윽고 수만 가지 희로애락이 풀리면서 악기는 세상에 태어나는 것. 그제야 공명의 숨통을 따라 둥근 결이 열리고 정간보의 맥박은 힘차게 뛴다. 콸콸콸 민족의 정기로 쏟아진다. 김완하 교수·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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