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늙은 인디언들을 만나면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위엄 때문에 마치 한겨울의 숲속을 산책하는 기분이 든다." 서부 개척의 산 증인이었던 화가 프레데릭 레밍턴이 남긴 말이다. 이 책은 수만 년 전부터 `거북이섬`이라고 불린 북미대륙에서 살아온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삶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총과 병균과 종교를 앞세우고 쳐들어 온 백인들에게 터전을 빼앗기고 물러가면서 그들이 남긴 명연설들을 모았다. 단순하면서도 시적인 그들의 연설은 오만한 백인이 문명의 허구뿐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과 정신세계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미타쿠예 오야신`이라는 말은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혹은 `모두가 나의 친척이다`라는 뜻의 다코타 족 인디언들의 인사말이다. 매우 간결하면서도 심오하게 우주에 대한 이해를 표현하고 있는 말로, 인디언들의 정신과 삶의 방식을 한마디로 잘 나타내주는 핵심적인 말이다. 몇 글자밖에 안 되는 짧은 단어 속에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가 다 담겨 있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인디언들의 그 인사말 속에 포함되어 있다. 이 책에서 인디언들은 우아하고도 열정적으로, 그러나 결코 장황하거나 화려하지 않은 말들로 이러한 그들의 진리를 이야기한다.

오늘날의 환경운동가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최초의 생태주의자들`이라고 부른다. 처음 북미대륙에 도착한 백인들은 자신들의 사회를 문명화되고 발전된 사회로 여기고 인디언들의 사회는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생명을 존중하고 대지와 더불어 사는 원주민들의 지혜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시애틀 추장, 조셉 추장, 구르는 천둥, 앉은 소, 검은 새…. 이들은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운 인디언 전사들이다. 이들의 연설문 속에는 자신들의 세계와 생명의 근원인 대지가 여지없이 파괴되는 것을 지켜보던 인디언들의 슬픔과 지혜, 그리고 비굴하지 않은 당당한 종말이 그대로 녹아 있어, 읽는 이의 가슴에 진한 감동을 준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의 품안으로 돌아간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우리에게 문명인 아니 인간으로서 알아야 할 세상의 근본과 삶의 교훈을 이야기한다. 또 우리가 진정 누구이며 무엇을 잃고 살아가고 있는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도 주고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이 연설문집은 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우리 삶의 자연성을 회복시켜 줄 귀중한 지침이다.

류시화 시인이 수집하고 우리말로 옮긴 이 책은 아메리카 인디언 역사에 길이 남을 41편의 명연설과 해설, 그리고 그들이 남긴 희귀한 어록까지 총망라하고 있다. 또한 평생 아메리카 인디언의 모습을 촬영한 에드워드 커티스의 뛰어난 사진들과 독특한 인디언 달력까지 담고 있어 인디언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집대성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15년에 걸친 오랜 집필 기간과 방대한 양의 자료 수집을 통해 이뤄낸 결과물이다. 1993년 첫 발간 이후 개정을 거듭하여 900쪽에 이르는 방대한 작업이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꼭 읽어야 할 책으로 꼽을 만큼 인디언들의 북소리처럼 울림이 큰 책이다. 서지영 기자

시애틀 추장 외 지음·류시화 엮음·더숲·906쪽·3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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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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