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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논단] 청와대 분수대 광장과 大田의 문화재청

2017-10-11기사 편집 2017-10-11 1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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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혼, 태평무의 원형을 지켜온 64년 외길 춤인생!", "문화재청의 부당한 행정으로 짓밟히다", "서양춤의 변형인 신무용 계승자에 대한 태평무 보유자 지정을 철회하라!", "제척사유, 담합의혹 있는 조사위원·문화재위원에게 태평무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

2016년 3월 10일 오전, 낯선 광경이 목격됐다. 청와대 분수대 광장에서 태평무 의상을 착용한 원로무용가가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감행하여 '충격'을 안겨줬다. 나라의 태평성대를 주제로 한 태평무는 우리 춤의 시조 한성준이 1930년대 말 창안한 춤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된 대표적인 민속무용으로 손꼽힌다. 꽃샘추위가 휘몰아친 추운 날씨에 1인 시위에 나선 팔순 명무의 모습은 절박하다 못해 처절하게 다가왔다.

이날의 진풍경은 빅뉴스로 다뤄지면서 매스컴을 달궜다. 무엇보다 시위 장소가 청와대 코앞이라는, 이른바 '공간의 상징성'도 한몫 했으리라.

그분은 왜 역사의 주인공을 자처했을까? 그분은 10대 중반에 태평무에 입문하여 일평생 오로지 한 스승만을 섬기면서 도제식으로 춤을 익힌 정통파로 알려져 있다. 일찍이 국가로부터 '보유자후보'라는 칭호도 부여받았던 터이다. 그런데 자신이 가르친 제자이자 후배가 태평무 보유자 인정예고자로 낙점되는 황망한 지경에 놓여졌었다. 문화재청은 2015년 승무, 살풀이춤, 태평무 등 3종목에 대한 보유자 선정심사를 실시했다. 15년만의 심사였고 결과는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총 27명의 응시자 중 태평무 1종목에서 단 1명 만을 보유자로 인정예고 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해당자가 원형과 정통성이 무시된 '신무용 계승자'라는 점에서 반감이 증폭됐다. 공교롭게도 심사위원 명단 사전유출, 특정 학맥의 영향력 행사, 콩쿠르식 심사방식 등 비정상적 행태들이 지탄을 받았다. 공정성과 객관성, 투명성을 저버린 문화재청의 부당행정은 국민적 공분(公憤)을 불러 일으켰다. 수차례 이의신청과 성명서가 발표되는 등 무용역사상 초유의 사건으로 비화됐다. 여론이 악화되자 문화재청은 결국 태평무 무형문화재 보유자인정을 보류결정으로 매듭지었다. 지난 정부에서 '보류결정'된 이 사건은, 당시 보류결정 될 수밖에 없었던 치명적 이유들을 고스란히 떠안은 채 현 정부로 이월되었다.

얼마 전 문화재청은 무형문화재 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보유자 복수지정, 조사방식 다각화, 조사내용 비공개 등이 주요 골자이다. 그 외 단체종목 보유자 불인정, 75세 이상의 전수조교에 대한 명예보유자 전환 계획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다. 우선 개선안을 마련하기까지 폭넓은 여론수렴 과정을 거쳤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더욱이 '태평무 사태'와 관련 책임져야 할 일부 문화재위원들의 인적청산 없이 그들이 관여한 제도개선이 얼마나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무형문화재 제도가 시행된 지 50여 년이 흘렀다. 무형문화재라는 공적(公的) 제도의 창출로 소멸 위기에 놓인 전통문화가 온전히 보존·계승될 수 있었다. 대신 전승환경의 변화에 따라 종목별로 인기·비인기, 부익부·빈익빈 등 양극화 현상이 심화됐다. 일부 인기종목의 경우, 사유화·권력화·자본화 양상으로 인한 폐해가 심각할 정도에 이르렀다. 이런 현상은 개인종목에서 두드러진다. 인간문화재 지정과 함께 프리미엄으로 누리는 다양한 특혜가 이른바 종신제(終身制)라는 점에서 끝없는 집착에 함몰되는 것은 아닐까. 때문에 개인종목의 경우, '사람(보유자)'을 지정하지 말고 '종목지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개선안은 시대흐름과 여론에 역행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보유자를 복수지정하고 75세 이상의 전수조교를 명예보유자로 전환한다는 계획도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미 사회적으로 검증된 75세 이상의 명무들은 공적(公的) 제도의 혜택에서 소외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퇴장해야 할 운명에 놓여 질지도 모른다. 혹여 이번 개선안이 특정인을 위한 방책이라는 오해를 사지 않길 바란다. 무형문화재 보전 및 전승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문화재청이 대전으로 이전한 지 올해로 20여 년에 이른다. '큰 밭(大田)'이라는 뜻을 품은 도시 이름답게, 대전에 둥지를 튼 문화재청이 보다 장대하고 정교한 문화재 행정의 최전선이기를….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연낙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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