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웬만한 콘도나 호텔에도 와인 오프너가 구비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여행시 오프너 챙기는 것을 잊고 와인만 들고 갔다가, 젓가락으로 코르크를 병안으로 힘껏 밀어 넣어 와인을 따라 마신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오프너(코르크 스크루)가 있어도 와인 초보자 시절엔 제대로 코르크를 빼내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스크루를 코르크 중앙에 정확히 꽂아넣는 것도 지렛대 원리를 이용해서 코르크를 뽑아 올리는 것도 상당한 숙련을 필요로 하는 작업입니다. 이러한 수고를 자동으로 해결해주는 전동식 와인 오프너까지 등장했는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와인 오프너로 검색되는 상품이 8만여 건이나 되는군요.

코르크는 코르크 참나무 껍질을 평균 13년마다 한번씩 껍질을 벗겨 얻습니다. 보통 25년 된 나무에서 3번째부터 채취한 품질 좋은 껍질로 코르크 마개를 만드는데 사용합니다. 코르크에는 속이 비어 있는 벌집과 같은 육각형의 세포가 1㎤ 공간에 수천만 개가 들어있고 코르크 전체 부피의 85%가 기체로 구성돼 있어서, 탄력성이 좋아 압력을 가해도 금방 원상복구가 됩니다. 코르크 마개로 와인병을 막고 와인을 눕혀 놓으면 와인이 코르크 마개에 닿아 코르크가 팽창하면서 병을 밀봉시킵니다. 만약 와인병을 세워서 보관하면 코르크가 수분과 접촉하지 못하게 되어 코르크가 말라버려 부서질 수도 있습니다.

좋은 와인은 장기 보관이 가능해서 숙성된 맛을 즐길 수 있지만, 오랜 기간 보관된 와인의 코르크는 오픈시 코르크가 중간에 끊어지거나 부스러져서 와인에 코르크 찌꺼기들이 들어가는 곤란한 경우가 발생하곤 합니다. 디켄터 등을 사용하면 굵은 찌꺼기는 들어낼 수 있지만 미세한 찌꺼기는 제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커피 필터를 사용하여 걸러내는 것은 와인 마니아들의 요령입니다. 필터가 없는 경우에는 조금 질긴 속성의 냅킨을 대신 사용하기도 합니다. 올드 와인의 코르크에 구멍을 뚫지 않고, 병과 코르크 사이에 2개의 비대칭 날을 집어넣고 마찰력을 활용하여 코르크를 뽑아내는 아소(Ah-So, Butler`s Friend)라는 도구도 있습니다.

보르도 등의 고급 와인너리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코르크의 기능 저하로 인한 장기 숙성와인의 품질 저하를 피하는 방법으로 리코르킹(recorking)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프랑스 마고 지역의 샤또 빨머(Palmer)는 와인평론가들로부터 최근에야 시음적기에 달했다고 평가받는 1961년 와인들을 마카오의 리스보아 호텔 카지노가 소장한 500병을 2005년에 현지 출장 리코르킹하면서 울러지 차이를 최근 빈티지가 아닌 당해년도 1961년 와인으로 채웠다는 놀라운 일화가 있습니다. 1991년부터 미국, 영국, 스위스, 뉴질랜드 등 전세계를 출장 다니며 리코르킹 클리닉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주 펜폴즈(Penfolds)의 와인 그랜지(Grange)도 유명합니다.

코르크의 통기성(通氣性)의 여부에 대한 논란은 재미있는 주제입니다. 코르크의 미세한 구멍을 통해 외부의 공기가 병 안으로 유입·순환되면서 숙성을 촉진하고 더 부드러운 맛을 내게 한다는, 소위 "와인은 코르크 마개로 숨 쉬면서 숙성된다"는 의견입니다. 과학적 분석 결과에 의하면 코르크 마개를 통해 공기가 드나드는 것은 극히 작아서 무시할 수준이며, 병입시 이미 와인에 산소가 충분히 섞여 있고 마개 아래 빈 공간에도 공기가 있기에 마개와 관계없이 병 숙성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기술이 발달해서 기밀성 차원에서는 스크루 캡슐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지난 칼럼(8월 16일, 와인동호회)에서 말씀드렸던, 계산상으로는 수명주기를 5년여 이상 지난 호주 와인 폼비스런(Formby`s Run) 샤르도네 2006이 코르크를 사용하지 않고 캡슐 마개를 사용한 덕에 신선한 풍미를 간직한 것이 좋은 사례입니다.

ETRI 미래전략연구소 산업전략연구그룹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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