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예당 오페라 배틀 공연 리뷰

오지희 교수
오지희 교수
배틀은 관객의 흥미를 끄는 중요한 형식이다. 지난 7일 대전예술의전당에서 `4인의 거장이 펼치는 오페라 배틀` 음악회가 열렸다. 전투라는 뜻을 가진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음악에서 배틀은 동시대 라이벌 음악가들의 힘 겨루기, 같은 악기 혹은 서로 다른 악기간의 우월관계에서 파생되는 철저한 경쟁이 그 밑에 깔려 있다. 아마도 서양음악사에서 가장 유쾌한 배틀 장면은 폐활량이 누가 더 좋은지 경쟁한 트럼펫주자와 카스트라토 파리넬리가 될 것이다.

청중의 갈채를 유도해 진검승부를 겨루는 배틀은 현재에도 유효한 콘셉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오페라 배틀의 타이틀을 내건 이번 연주회에서 4명의 작곡가 캐릭터는 정작 무엇을 배틀하려고 하는지 그 실체가 분명하지 않았다. 이유는 명백하다. 배틀이 이루어지려면 경쟁할 수 있는 분명한 기준이 필요한데 음악회는 단지 18세기 후반 모차르트, 19세기 초 도니제티, 19세기 후반기 베르디와 푸치니 유명 오페라 아리아를 시대별로 나열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모차르트 캐릭터를 유독 천박한 측면만 강조한 억지스런 연출은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굳이 배틀의 성격을 고른다면 성악가들이 돌아가면서 부른 노래에서 찾을 수 있다. 푸치니 토스카에서 소프라노 고진아·테너 신남섭의 진지한 표현력은 피아니스트 박세환의 섬세한 반주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했고, 소프라노 조용미와 바리톤 여진욱의 열정은 베르디 오페라에 내재된 인간적인 감성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그렇기에 대전예당이 오페라 배틀의 이름으로 무대를 기획한 것은 그 자체로 지역예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또 다른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문제의 핵심은 콘텐츠 미비로 드러난 준비성 부족과 특정단체 구성원들이 주축이 된 절차의 공정성에 있다. 단 한 번이라도 무대에 서는 게 절박한 지역 예술가들에게 최소한 대전예당 공연기획으로 음악회 이름값을 하려면 기회의 균등과 투명성 위에 움직이는 오페라 배틀이어야 했다. 대관공연도 아닌데 어디서 본 듯한 무대를 배틀이란 이름하에 같은 단체 소속 예술가들 위주로 출연한 공연이 대전예당 기획공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허술하다. 지역공연일수록 철저한 사명감으로 무대를 선도해야 미래가 밝다. 오지희 음악평론가·백석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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