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흐르는그곳 골목길] ⑦ 조치원 왕성길

세종시 조치원읍을 대표하는 왕성길은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는 왕성극장 등 명소들이 많아 조치원 사람들의  추억이  묻어 있는 장소다. 사진=신호철 기자
세종시 조치원읍을 대표하는 왕성길은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는 왕성극장 등 명소들이 많아 조치원 사람들의 추억이 묻어 있는 장소다. 사진=신호철 기자
`왕성극장, 해태집, 한흥상회, 고려당, 허바허바 사진관….`

세종시 조치원읍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장소들이다.

친구들과 같이 만화영화를 보러 가던 왕성극장, 첫사랑 여친과의 미팅장소로 기억되는 해태집, 1년에 한 번쯤 들렀을 것 같은 허바허바 사진관, 그리고 빵집인 고려당과 문구점인 한흥상회.

조치원 사람들은 요즘도 학창시절의 추억이 묻어 있는 왕성길의 명소를 이야기하면 가슴이 설렌다.

젊음의 거리였던 왕성길은 쇠락의 길을 걸은 지 수십 년이 됐고, 그 길을 활보하던 청년들도 이제 반백이 됐다. 왕성길은 조치원 사람들에게는 진한 추억의 장소이지만 그만큼 아쉬움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조치원읍 중앙에 자리한 왕성길은 왕성극장이 위치해 왕성극장길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새내로 12길로 표기되는 이곳은 읍사무소 소재지로 조치원역과 근접하고 보건소, 우체국, 시민회관 등이 가까이 있다.

왕성길은 골목의 `간판`이었던 왕성극장과 흥망성쇠를 같이 했다. 왕성극장이 문을 열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중앙극장과 서라벌극장이 생겨나 왕성길은 이들 세 극장과 함께 성장가도를 달렸다. 세 극장은 영화를 상영하기 전날이면 전봇대, 담벼락 등에 벽보를 붙이고 북과 장구까지 동원하는 등 치열한 홍보전을 펼쳤다고 한다. 1970-80년대 극장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며 특히 학생들의 만화영화 단체관람이 줄을 이었다.

1970년대에는 영화관에서 신파극이나 가수 한명만 나오는 공연이 열리기도 했다. 이럴 때면 멀리 조치원읍 주민들뿐 아니라 금난면 주민들까지 몰려와 공연을 보기도 했으며, 공연장을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소리만이라도 듣고 싶어 주변을 서성거렸다. 왕성길은 1980년대 유동인구가 늘어나고 고려대 학생들이 찾아오면서 황금기를 맞게 된다. 조치원역과 터미널이 가까워 넘쳐나는 고객들로 길은 불야성을 이루게 됐다.

하지만 화려했던 왕성길도 다른 지역에 아파트촌이 생겨나고 상권이 이동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쇠락의 길을 가게 된다. 중앙극장과 서라벌 극장이 문을 닫고 겨우 버티던 왕성극장마저 노래방으로 바뀌고 만다. 골목길은 2000년 이후에는 어지러운 전기선과 불법 주차 자량으로 환경이 더욱 악화돼 돌아서는 고객들의 발길을 붙잡지 못했다. 조치원을 대표하는 왕성길의 쇠퇴는 곧 조치원의 침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조치원은 조선시대 청주목에 속했으며 1931년 대전, 광주와 함께 읍으로 승격됐다. 경부고속도로와 국도 1호선이 지나가는 교통의 요충지 이지만 대전 만큼의 지속적인 발전을 이뤄내지 못했다. 조치원 주민들은 최근에는 세종시의 신도심인 행정중심복합도시가 주목 받으면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조치원역 인근에서 29년째 분식집을 운영하는 유부미자(73)씨는 "조치원이 세종시가 되고 나서부터 손님들이 오지 않는다"면서 안타까워 했다.

조치원 사람들의 애환이 서린 왕성길은 과거 화려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이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세종시와 조치원의 상인들이 손을 잡고 왕성길 부활을 꿈꾼 지도 만 3년이 됐다. 세종시는 지난 2014년 10월 조치원 활성화를 위한 `청춘조치원 비전`을 선포했으며 시장 상인들과 주민들은 왕성길 경관협정운영협의회란 이름으로 상인회를 구성해 힘을 모으고 있다.

우선 불법 주차를 걷어내기 위해 거리에 화분을 설치했으며 더 나아가 `차 없는 거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세종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왕성길의 전기선과 간판, 건물 입면을 순차적으로 정리할 계획이다. 최근엔 행정안전부의 `안전한 보행 환경조성사업`에 선정되면서 국비 6억 원과 시비 6억 원을 환경정비에 투입할 수 있게 됐다. 또한 골목길의 유휴 공간을 활용해 시민들의 휴식공간, 버스킹 공간도 검토하고 있다.

왕성길의 몇몇 가게들은 요즘 들어 조금씩 고객이 늘어나면서 가능성을 보고 있다. 해태집과 인근 편의점을 찾는 고객들도 늘어나면서 희망적인 생각을 갖는 상인들도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왕성길에서 대를 이어 47년째 분식집인 해태집을 운영하고 있는 조돈행(67)씨는 "장사가 안돼도 왕성길을 떠난다는 생각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면서 "소박하면서도 음식다운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고 말했다.

세종시는 왕성길을 중심으로 조치원 골목길 활성화를 위한 도심여행 프로그램인 `달빛 투어`도 선보이고 있다. 조치원역에서부터 권투체육관, 왕성길, 평리복개천을 거쳐 조치원 정수장, 송경태 가옥, 평리 문화마을, 허만석 제방, 조천다리까지 가는 1.75㎞ 코스를 개발했다. 지난 7월부터 11월까지 5개월간 투어 참여를 희망하는 단체나 주민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영화 반칙왕 촬영장소인 권투체육관은 아직도 수십 년 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권투체육관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보급기지로 사용되던 곳으로 전쟁 이후 체육관으로 바뀌었다. 체육관은 유명세를 얻으면서 드라마나 CF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으며, 최근엔 KBS2가 방송예정인 월화드라마 `너도 인간이니`를 촬영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평리복개천에서는 국보 106호로 지정돼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인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이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국보가 발견되기 전에는 실개천 징검다리 한쪽에 놓여 여인들의 빨래판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왕성길을 지나 조치원 정수장 쪽으로 가지 않고 평리복개천을 지나면 평리문화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은 전문가들이 밑그림을 그리고 주민들이 타일을 붙여 만든 타일벽화로 잘 알려져 있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예쁜 타일로 만들어진 그림들이 은행나무집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오래된 마을이지만 깨끗하고 걷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기는 곳이기도 하다.

김성수 세종시 청춘조치원과장은 "세종형 도시재생사업인 청춘 조치원 프로젝트를 하면서 조치원 주민들과 골목 상인들의 의식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면서 "조치원이 과거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가겠다"고 밝혔다.

.은현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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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치원읍 평리문화마을 타일벽화는 2016년 10월부터 현재까지 주민들과 문화예술가들이 합심해 만들어 가고 있다.  사진=은현탁 기자
조치원읍 평리문화마을 타일벽화는 2016년 10월부터 현재까지 주민들과 문화예술가들이 합심해 만들어 가고 있다. 사진=은현탁 기자
조치원 왕성길에서 평리문화마을로 가는 길에 위치한 송경태 가옥은 한국과 일본의 건축양식이  뒤섞인  근대건축물로 상량에 1931년 세워졌다는 문구가 있다.    사진=은현탁 기자
조치원 왕성길에서 평리문화마을로 가는 길에 위치한 송경태 가옥은 한국과 일본의 건축양식이 뒤섞인 근대건축물로 상량에 1931년 세워졌다는 문구가 있다. 사진=은현탁 기자
세종시 조치원읍의 도심여행인 `청춘조치원 달빛투어` 1코스 중 하나인 권투체육관이 최근 드라마촬영지로 각광받고 있다.                                     사진=은현탁 기자
세종시 조치원읍의 도심여행인 `청춘조치원 달빛투어` 1코스 중 하나인 권투체육관이 최근 드라마촬영지로 각광받고 있다. 사진=은현탁 기자
김성수 세종시 청춘조치원과장이 조치원읍 왕성길을 찾는 시민들의 휴식공간과 버스킹 공연장소로 활용할 계획인  공터를 가리키고 있다.                                                     사진=은현탁 기자
김성수 세종시 청춘조치원과장이 조치원읍 왕성길을 찾는 시민들의 휴식공간과 버스킹 공연장소로 활용할 계획인 공터를 가리키고 있다. 사진=은현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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