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긴 연휴가 지났다. 야간에 잠깐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서울로 상경하는 수많은 자동차들의 불빛이 장관을 이룬다. 운전자들이야 죽을 맛이겠지만 부모와 형제들을 만나고 생긴 에너지로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해 각자 자기의 원래 위치로 돌아가고 있다. 경제의 어려움, 나라의 불안정 등은 잠시 잊고 지난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시간적 여유가 많아 서재를 뒤적이다 예전에 사두었던 책들 중 `대통령의 위트`라는 책을 발견하고 꺼내들었다. 저자를 보니 밥 돌 상원의원으로 아직도 가끔 매스컴에서 접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냥 편하게 소파에 앉아 책장을 넘겨본다. 간략히 말하자면 이 책의 내용은 조지 워싱턴부터 현대까지 미국대통령들의 유쾌한 발언과 위트를 정리한 책이고 유머리스트라는 기준에 따라 미국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를 시도한 것이다. 대통령의 리더십에는 통치력과 그 통치력에 버금가는 요소로 유머감각이 요구되고 가장 성공적이었던 지도자들은 분명히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이 책의 저자도 상당히 농담을 잘하는 분으로 자기의 정치가로서의 장점을 내세우기 위한 의도도 있어 보인다.

책을 읽으면서 언뜻 "왜 우리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유머나 위트를 남기지 못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들에게 웃음을 주고 많은 연설 중 기억에 남고 잊혀지지 않는 명언이 있었나? 잘 생각이 안나는 것을 보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딱딱하고 조금은 강압적이며 말하는 과정의 인상도 웃음기가 거의 없는 심각한 표정들만 떠오른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미국의 대통령보다 스트레스가 많은 것일까?

수많은 이해 당사자의 갈등을 무력으로 해결하는 독재국가가 아니라면 수많은 소통과 갈등 조정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정치야 말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이 필요한 분야일 것이다. 현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핵심은 정곡을 찌르되, 유머를 곁들인 위트는 조급함과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반증일수도 있다. 한 나라의 행정을 책임지는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직무수행이나 커뮤니케이션 차원에서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는, 어쩌면 가장 고난위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위치가 아닐까? 짜고 치는 기자회견 전문이 전날 이미 다 유출된 상황에서 `여러 개의 질문을 무작위로 받아도 까먹지 않을 정도로 자신이 머리가 좋다`라고 말하는 과거 우리 대통령의 말도 유머로 받아들여야 하나?

이 책에 기술된 유머와 위트의 순위가 정치평론가들에 의한 미국의 대통령 업무수행 평가 순위와 일치하는 것은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알려준다.

포유류 중 웃을 수 있는 능력은 인간에게만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웃음이 줄어든다. 웃음은 부교감 신경을 자극해서 긴장을 이완시켜 주고 자율신경을 조화롭게 하며, 우리 몸의 면역체계도 강화시킨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규명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웃으면 건강해진다는 것이고 복이 온다는 것이다.

루스벨트의 영부인이 재소자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교도소를 방문하기로 한 날, 이른 아침에 남편을 깨우지 않으려고 조용히 백악관을 나섰다. 뒤늦게 일어난 루스벨트가 비서에게 "영부인이 왜 보이지 않지?" 하자 비서가 "교도소에 가셨습니다"라고 답하자 루스벨트가 되물었다. "근데 혐의가 뭐지?"

짧은 유머이지만 위트가 넘친다.

우리에게 유머와 위트가 부족한 이유가 무엇일까? 여유가 없는 것 같고 체면치레가 많다. 음담패설이나 어거지 말장난이 유머와 위트인 줄 안다. 주변을 둘러보면 동네 할머니들이 불쑥 던지는 한마디 속에 신선한 유머가 들어 있기도 하고, 무서운 아버지의 불호령 속에 배꼽 잡는 위트가 녹아 있을 때도 있다.

감기가 들어 기침을 하니 외래 진료실에 들어온 어르신이 나에게 던지는 한마디.

"의사도 아퍼."

오히려 환자에게 웃음과 미소를 주어야 할 내가 웃고 있다. 환자분이 나를 치료하고 있다.

이날 저녁 병원직원들과의 모임에서 한 직원이 "병원장님이 몸이 불편하셔서 인상이 안 좋으니 하루종일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져요. 아프지 마세요."

아파도 아픈 표시를 할 수가 없다. 책임자라는 것이 이러한 위치임을 느껴본다.

링컨은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암흑기에 `나는 울면 안 되기 때문에 웃는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루스벨트가 비슷한 말로 국민들에게 연설을 했다. 대통령에 당선 후 얼마 안되어 헝클리란 사내의 저격을 받은 레이건. 중상을 입고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도 알고있다. 수술전 주위에 젊은 간호사들이 여럿 모여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윙크를 하며 "낸시는 내가 이러고 있는 것을 모르겠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수술을 담당할 의사에게 "당신들은 물론 모두 공화당원이겠지요?"라고 하자 주치의의 답이 더 명언이다. "친애하는 대통령 각하, 우리는 최소한 지금 당신을 수술하는 시간만큼은 모두 공화당원입니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의사도 환자도 서로를 믿고 맡긴다는 멋진 위트이다. 이 작은 위트가 국민들을 안심시켰을 것이다. 우리 지도자들도 국민들에게 이러한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으면 한다. 이제 길고 한편으로는 지루했던 연휴도 끝났다. 또다시 밀린 업무와 시끄러운 세상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나부터 남에게 웃음을 줄 수 있도록, 병원에 오시는 환자들의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양준영 대전베스트정형외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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