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레드 와인을 몇 번 맛보게 되면 여러 포도 품종을 블렌딩한 보르도 와인과 단일 품종(피노누아)만으로 만든 부르곤뉴(버건디) 와인을 구별하게 됩니다. 병 모양도 달라서, 병목까지 유선형 곡선을 그리며 서서히 좁아지는 부르곤뉴와 달리 보르도 와인병은 어깨가 높아 병목과 거의 수직으로 만납니다. 보르도에서 와인 양조에 사용하는 까베르네 쇼비뇽을 비롯한 포도들의 두꺼운 껍질로 인해 숙성되면서 찌꺼기가 다량 발생하기에, 와인을 따를 때 침전물이 잔에 따라오지 않고 어깨 턱에 걸리게끔 한 것입니다. 이렇듯 단순한 와인 병에도 과학이 숨어 있습니다.

된장찌개는 뚝배기에 담아야 제 맛이 나듯이, 와인도 와인 속성에 맞는 잔에 따라 마셔야 그 와인의 여러 면모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마치 골프 라운딩을 할 때 티샷은 드라이버, 페어웨이에서는 우드와 아이언, 그린에서는 퍼터를 사용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차갑게 마시는 화이트 와인은 레드 와인잔보다 작고, 스파클링 와인잔은 올라오는 기포를 감상하기 적합하게 길쭉합니다. 와인잔 생산에 특화된 오스트리아 업체 리델(Riedel)은 품종별 와인이 입술의 특정 부위에 직접 떨어지도록 와인잔 입구의 크기와 립(와인잔이 입술에 닫는 부위)의 각도까지 계산해서 적용한다고 들었습니다.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에도 수많은 과학적 원리가 적용되기에, 외놀로지(Oenology·양조학 또는 와인학)라 칭해지는 학문 분야도 있습니다. 프랑스에는 보르도, 디종, 렝스, 뚜르, 몽펠리에 등의 주요 와인 산지 대학에 양조학과가 있습니다. 작년 7월 창의연수 제도(5년간 2일씩 적립한 휴가와 당해연도 12일 휴가를 합쳐 사용)를 활용한 보르도와 북부 론 와이너리 투어에서 만났던 이들 대학 출신의 젊은 양조자(Oenologist)들의 본인 직업에 대한 열정에 감동했던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미국에는 나파밸리 와인너리들의 인력산실인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데이비스(UC Davis) 양조학과가 유명합니다.

와인 생산에 ICT(Information & Communication Trchnology·정보통신기술)가 적용되기도 합니다. 제가 근무하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는 2010년 미국 다나(Dana) 와이너리와 농업IT(스마트팜) 기술이라 할 수 있는 `스마트 와이너리 생장관리 솔루션`을 개발하여, 포도의 생장환경 변화·생장품질 변화 등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 및 저장하여 분석·관리하는데 도움을 준 경험이 있습니다. 다나 와이너리는 동아원그룹이 2005년 나파밸리 헬름스(Helms) 빈야드를 인수하여 설립한 와이너리로, 대표 와인인 로터스(Lotus) 2007이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로부터 100점 만점을 받으면서 유명해졌습니다.

기술적으로는 유비쿼터스 센서 네트워크(USN·Ubiquitous Sensor Network)를 적용하였는데, USN은 필요한 모든 사물에 전자태그를 부착해(Ubiquitous) 사물과 환경을 인식하고(Sensor) 무선 네트워크(Network)를 통해 실시간 정보를 구축·활용토록 하는 통신망을 의미하는데, 요즘에는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 개념으로 진화했습니다.

최근 ETRI에서는 IoT, 빅데이터, AI(인공지능) 등이 핵심요소인 4차산업과 관련하여 물리적 행성과 사이버 행성이 초연결-지능화되는 IDX(Intelligent Digital Transformation)라는 개념을 정립해서, 국가·사회 시스템의 IDX 14개 세부 추진분야(국방·의료·행정·제조·농수산·교통·유통·금융·복지·안전·생활·교육·환경·에너지)를 도출하여 연구기획 중입니다. 와인 애호가 입장에서 제조·농수산·유통 IDX 등에서 와인 생산과 유통에 적용될 수 있는 유용한 기술기획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신성식 ETRI 미래전략연구소 산업전략연구그룹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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