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흐르는그곳골목길] ⑥ 대전 대흥동 거리

대전 문화예술을 꽃 피운 중심지였던 중구 대흥동 천주교대흥동성당-중구청거리 전경.강은선 기자
대전 문화예술을 꽃 피운 중심지였던 중구 대흥동 천주교대흥동성당-중구청거리 전경.강은선 기자
한때 이 거리엔 묵향이 났다고 한다. 필방·표구사 등이 블록마다 들어서 있었고, 서예가들이 쓴 작품이 가게마다 걸려 있었다. 자연스레 갤러리와 소극장이 생겨났다.

대흥동(大興洞)이라는 지명처럼 문화예술이 대흥한 곳, 천주교 대흥동성당부터 지금의 대전중구청에 이르는 이 거리는 대전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다. 500m가 채 안 되는 이 거리는 누구에겐 꿈의 공간이고, 누구에겐 추억이 서린 공간이다. 그래서 `낭만이 깃들었다`는 표현이 아주 어울리는 곳이다. 구석구석 찾으면 나오는 옛 필방, 화방은 어찌나 정겨운지. 이곳은 시간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분위기가 있다. `문화예술의 거리`로 명명되면서부터는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뒤따라 밟아본다는 의미가 더 붙었다. 그래서인지 걷는 게 즐거운 거리다. 계속 걷고 싶은 거리다.

대전 중구 대흥동의 대흥(大興)은 `크게 부흥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이 지어낸 일본식 지명이다. 한국인이 아닌 이곳에 살았던 일본인들이 흥하라는 의미로 지어졌다. 이름과 다르게 아픈 역사가 있는 지명이다.

대흥동은 근대문화가 들어오면서 유동인구를 흡수해 형성됐다. 관사와 교육기관 그리고 의료기관이 들어서면서 근대문화의 중심지가 됐다. 이후 대흥동은 대전의 `문화 1번지`로 불릴 만큼 신문명 수용의 선두에 있었다.

대흥동은 약 110년의 역사를 지나면서 다양한 현실 위에 삶의 방식을 만들어왔다. 대흥동의 문화는 대흥동이라는 삶의 터전에서 사람들이 살아오며 만든 삶의 총체적 모습을 의미한다. 그것은 자연과 사회적 상황에 순응해 자연스럽게 이뤄온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늘날의 대흥동은 대전이 도시로 형성될 때부터 함께 이뤄졌다. 대전 흥망성쇠의 역사를 그대로 떠안고 있는 셈이다. 과거 대전의 중심이었던 중구는 행정·문화예술·상업의 중심축을 담당해왔지만 1990년 이후 둔산동 등 신도심 개발로 지역경제 침체와 주택 노후 현상 등에 따라 도시 기능이 쇠퇴하고 있다.

반짝였던 이곳은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다. 그 흐름이 오욕의 것이건 혹은 자랑스러운 것이건 대흥동은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대흥동만의 독특한 문화로 꽃피워냈고 또 새로운 문화의 열매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이곳은 근대가 시작된 이후의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다.

대흥동은 당시의 문화들을 담아낼 방법들을 만들어냈는데, 소극장 등 극장과 공연장 그리고 화방들이다. 대전의 극장(영화관)들은 시민들에게 가장 보편적인 문화 향유의 수단이 됐다. 1980년대 중앙로에서 대흥동으로 들어가는 거리를 `대전극장통`으로 불렀다. 대전극장통에는 스카라극장, 명화극장, 뉴타운극장도 있었다.

대흥동은 또 화랑이 밀집했던 곳이다. 오원화랑, 현대화랑, 신신화랑, 쌍리갤러리, 중앙갤러리, 예가화랑, 우성화랑, 청록화랑, 여일미술관, 홍익화실 등이 줄지어 있었다. 당시 오원화랑의 소개문에는 대흥동을 `중부권 미술계의 산실`이라고 표현했을 정도였다. 이는 대전뿐만 아니라 중부권의 미술가들이 작품을 발표하고 다른 지역 미술가들과 교류하는 터가 됐다는 의미다. 오원화랑은 전시회뿐 아니라 미술전문지를 발간해, 예술가와 문화 향유자들 사이에 소통의 통로를 다양하게 만들었다.

공연장으로는 대전문화원, 가톨릭문화회관, 소극장 앙상블, 시립연정국악원 등이 손꼽힌다. 1979년 유락백화점 3층에 `카페 떼아뜨르`가 문을 열었는데, `가갸거리의 고교씨`(김용락 작·진규태 연출) 등의 연극이 공연됐다. 1984년에는 소극장 앙상블이 개관했다. 주인은 청소년기부터 연기자 생활을 했던 이종국 선생이었다. 대흥동의 소극장은 관객 속으로 들어가 함께 공유했다. 관객의 생각과 정서를 가까이에서 호흡했다.

1980년대 대흥동은 예술과 상업 문화의 정점에 서 있었다. 대전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었고 젊은이들이 찾는 젊은이의 거리였다. 카페와 화랑 등에서 예술가들이 모여 교류했고 전시장과 소극장에서는 그들이 쌓아올린 예술의 소산들이 빛을 발했다.

블록마다 있었던 갤러리와 필방, 표구사는 이제 쉽게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현대갤러리는 대흥동에서 32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85년 문을 열어 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해 온 현대갤러리는 여전히 묵묵히 그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김경숙(69) 현대갤러리 관장은 "그동안 영리 목적이 아닌 예술가들과의 소통의 공간으로 운영해왔다"며 "이곳이 원도심이 되면서 유동인구도 많이 줄었지만 우리 갤러리뿐 아니라 쌍리 등 다른 갤러리들은 여전히 사명감을 갖고 예술 중심지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갤러리 한 블록 위에 있는 청양한지는 15년째 이곳에 있다. 원래 옆 골목에 있었던 청양한지는 지난해 이곳 메인 거리로 나왔다. 주인 김태곤(56) 씨는 "20-30년 전보다는 표구사랑 필방이 많이 줄었다. 40%는 없어졌다"며 "예전엔 서예가 인기가 많아서 (표구사·필방이) 많았지만 시대가 달라지니 세월의 흐름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970년대 대흥동을 예술문화지구로 만든 대표적인 이는 고 정훈 시인이다. 그는 1940년 `가톨릭 청년`에 `머들령`을 발표하면서 시작(詩作) 활동을 했다. 대흥동 그의 자택에서 제자들을 길러내며 대흥동에 문학의 향기를 채웠다.

가톨릭문화회관으로 대표되는 공연장도 대흥동을 문화지구로 만드는데 큰 몫을 했다. 대흥동은 1960년대 대전에서 가장 큰 예식장인 대전예식장과 시온예식장·가톨릭문화회관이 대흥동에 있었다. 이곳에서는 박미영·임윤정 피아노 리사이틀, 제3회 베데스타 연주회, 진정숙 작곡발표회, 키쿠치 마치코 클래식기타연주회 등이 열렸다. 다양한 전시회도 열렸다. 대전향전회원 고서화전이나 대전우석회의 수석전이 대표적이다.

1980년대엔 잇따라 생긴 커피전문점에서 시화전과 시낭송회가 열렸다. 예술가들이 직접 경영하는 곳이 많았던 이들 커피전문점은 예술가들의 해설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프랑스에 살롱 문화가 형성됐던 것과 유사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1980년대와 1990년대 대흥동은 상업과 문화를 밀착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한 곳이었다는 특징이 있다.

문화는 구성원들이 가꾸지 않으면 사라진다. 대흥동의 문화는 자생적이다. 이곳 주민들은 행정기관의 정책과 별도로 2008년부터 대흥동 일대에서 `대흥동립만세`를 열고 있다. 매년 8월 대흥동 일대에서 열리는 자발적인 축제다. 예술가와 상인, 청년들이 모여 사랑방과 공연무대를 열고 있다. 또 대흥동 자투리 시장도 매월 첫째 주와 셋째 주에 여는 등 자생적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대전중구문화원 관계자는 "대흥동은 상업과 연계한 문화의 거리 형태로 형성된 독특한 곳으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문화 생산과 소비가 함께 이뤄진 진정한 문화의 중심지였다"며 "대흥동이 문화의 공간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건 상호간의 필요성과 공감대 형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중문화예술특화거리조성사업, 근대문화예술특구 지정 등으로 정책과 연계해 대흥동의 부활을 이끌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강은선 기자

*취재협조=대전중구문화원 ·(사)대전문화유산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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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중구 대흥동 천주교대흥동성당-중구청거리 전경. 강은선 기자.
대전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중구 대흥동 천주교대흥동성당-중구청거리 전경. 강은선 기자.
대전 중구 대흥동 천주교대흥동성당. 강은선 기자
대전 중구 대흥동 천주교대흥동성당. 강은선 기자
대전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중구 대흥동 천주교대흥동성당-중구청거리 전경. 강은선 기자
대전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중구 대흥동 천주교대흥동성당-중구청거리 전경. 강은선 기자
대전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중구 대흥동 천주교대흥동성당-중구청거리. 표구사, 필방, 화랑이 가득했던 이 거리에 꽤 많은 갤러리와 필방이 자취를 감췄다. 32년동안 대흥동을 지키고 있는 현대갤러리 모습. 강은선 기자
대전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중구 대흥동 천주교대흥동성당-중구청거리. 표구사, 필방, 화랑이 가득했던 이 거리에 꽤 많은 갤러리와 필방이 자취를 감췄다. 32년동안 대흥동을 지키고 있는 현대갤러리 모습. 강은선 기자
대전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중구 대흥동 천주교대흥동성당-중구청거리. 표구사, 필방, 화랑이 가득했던 이 거리에 몇 남아 있지 않은 화랑과 필방이 각각 양쪽에 보인다. 강은선 기자
대전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중구 대흥동 천주교대흥동성당-중구청거리. 표구사, 필방, 화랑이 가득했던 이 거리에 몇 남아 있지 않은 화랑과 필방이 각각 양쪽에 보인다. 강은선 기자
대전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중구 대흥동 천주교대흥동성당-중구청거리. 표구사, 필방, 화랑이 가득했던 이 거리에 몇 남아 있지 않은 표구사 모습. 강은선 기자
대전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중구 대흥동 천주교대흥동성당-중구청거리. 표구사, 필방, 화랑이 가득했던 이 거리에 몇 남아 있지 않은 표구사 모습. 강은선 기자
대전 중앙로 일대 시가지 전경(1979년 10월). 사진=대전중구문화원 제공
대전 중앙로 일대 시가지 전경(1979년 10월). 사진=대전중구문화원 제공
1970년대 대전역에서 바라본 중앙로 일대 시가지 전경. 사진=대전중구문화원 제공
1970년대 대전역에서 바라본 중앙로 일대 시가지 전경. 사진=대전중구문화원 제공

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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