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위에 비도 자주 내렸다. 지구 온난화 탓으로 갈수록 여름 날씨가 나빠지고 있어 걱정이다. 그래도 어김없이 가을이 왔다. 산과 들은 열매를 맺고 사람들의 곳간에는 햇과일과 곡식이 쌓인다. 마음이 넉넉해지는 계절이다. 이번 가을이 더 넉넉히 느껴지는 까닭은 드물게 맞이한 긴 연휴 때문이기도 하다. 긴 연휴의 가운데 추석이 있다.

추석은 우리 겨레에게 가장 큰 명절이다. 삶의 터전을 준 대자연과 농사지을 땅을 물려주신 조상님께 고마운 마음을 드리는 날이다. 결실의 기쁨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온 마을의 큰 잔칫날이기도 하다. 함께 햇곡식으로 빚은 송편을 나누어 먹고 강강술래, 줄다리기, 씨름과 같은 놀이로 어우러졌다.

한가위에 행하는 여러 세시풍속 중에 충청 지역에는 추석날 밤, 소년들이 놀던 `거북놀이`라는 것이 전해져 온다. 수수 잎을 따서 거북이 등판처럼 엮어 등에 메고 엉금엉금 기며 거북이 흉내를 내며 집집마다 들르는 놀이이다. 풍물패가 거북이를 앞세우고 들어가 한판 논다. 그러다가 배가 고프다고 하면서 땅바닥에 쓰러진다. 그러면 집 주인이 송편과 음식을 내 준다. 음식을 받으면 거북이는 그 집의 축원을 빌어주며 한바탕 더 놀고 나온다.

거북놀이는 온 마을이 함께 즐기며 나누었던 세시풍속이다. 그렇게 마을이 아이들을 함께 돌보고 길렀다. 안타깝게 요즈음은 그런 마을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함께 농사짓고 함께 나누던 예전과 사는 방법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함께 어우러져야 할 까닭이 있다. 이웃과 함께 정을 나눌 수 있는 마을을 만드는 일은 삶은 더욱 풍부하게 가꾸는 길이다. 마을을 따뜻한 공동체로 만들어야 할 가장 큰 까닭은 아이들에게 있다. 온 마을이 아이들을 함께 돌보고 온 마을이 배움터가 된다면 그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 배움을 다시 마을에 돌려 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마을교육공동체`이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을 상징하는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입니다.`라는 말도 뜻이 같다. 추석을 계기로 현재 우리 삶을 풍부하게 할 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위한 더 나은 미래인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추석에는 부모님을 찾아뵙고 일가친척을 만나기도 한다. 가족이 함께 긴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살아 있는 가정교육에 더 없이 좋은 기회다. 이 좋은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첫째, 이야기꽃을 피웠으면 좋겠다. 마주보고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가 교과서 보다 훨씬 큰 힘 있다. TV도 끄고 스마트폰도 내려놓고 아이들과 눈빛을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누자. 어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겠지만 먼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자. 요즈음 학교폭력이나 왕따가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지만 가정에서 이야기만 많이 나누어도 이런 문제의 대부분은 예방할 수 있다.

둘째, 아이들과 함께 놀이를 즐겨 보자. 아이들에게 놀이는 밥이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머리와 몸을 성장시키고 행복감과 인성, 사회성을 키운다. 가족 모두 어우러져 노는 즐거움을 맛보자. 추석에 많이 하는 세시놀이도 좋고 딱지치기, 제기차기, 가족 대항 윷놀이도 좋다. 우리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짜 즐거움을 느끼면서 놀게 해 주는 것이다.

셋째, 일을 나누어 모두가 즐거운 명절을 보내자. 우리나라에는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성들은 몸 고생, 마음고생이 심하다. 이번 추석부터는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송편 빚는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일을 함께 나누어 실천해 보기 바란다. 성에 구분 없이 함께 일하고 제사도 함께 지내는 양성평등의 새로운 명절 문화를 만드는 일은 우리 아이들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한가위에 뜨는 달은 넓고 둥근 모습으로 높낮이를 가리지 않고 세상 곳곳을 고르게 비춘다. 둥근 달빛의 마음으로 넉넉히 이웃을 품고 낮은 곳을 바라보며 행복한 추석 보내기 바란다. 최교진 세종시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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