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아이캔스피크
아이캔스피크
위안부 피해자의 이야기를 이처럼 똑똑하게 그려내는 영화가 또 있을까. 코미디 요소를 넣으며 부담없이 시작한 영화는 묵직한 메시지를 날카롭게 꽂는다. 결코 가볍지 않은 유머, 가볍지 않은 이야기 끝에는 감동이 밀려온다.

이 영화는 2007년 미 하원의회 공개 청문회를 통해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이 통과된 실제 사건이 모티브가 됐다. 영화 제목인 `아이캔 스피크(I Can Speak)`처럼 그들은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일본군 `위안부`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요시미 요시아키에 따르면, 강제동원된 여성의 수는 최소 8만 명에서 20만 명으로 추산, 그 중 조선인 여성의 비율은 무려 절반이 넘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간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90년대 초 국내 여성운동이 성장하면서 수면 위로 오르기 시작해 아시아 여러 피해국으로 전파되었다. UN은 일본에 진상 규명, 사죄와 배상, 책임자 처벌 등을 권고했지만 일본은 권고를 무시하고 사실 자체를 왜곡했다. 이에 미국의 한국·중국 교포들이 강하게 문제제기를 했고, 1997년 일본계 미국인 마이클 혼다 하원 의원을 필두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미 하원의원들이 일본 정부에게 사죄를 요구하는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을 의회에 제출했다. 결의안 제출로부터 만장일치 통과하기까지 무려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 이때 미 하원의원들의 결정을 완전히 굳히게 한 결정적인 계기는 2007년 2월 15일 미국 하원 공개 청문회에서 있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이용수 할머니의 증언이었다.

`평화의 소녀상`이라는 이름 아래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국가는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한다. 그래서 부채의식은 시간이 갈수록 더 깊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현재를 조명, 용기 있게 전 세계 앞에서 증언한 그녀의 진취적인 삶의 태도를 통해 지금의 우리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을 전한다.

온 동네를 휘저으며 무려 8000건에 달하는 민원을 넣어 도깨비 할매라고 불리는 `옥분`(나문희). 20여 년간 누구도 막을 수 없었던 그녀 앞에 원칙주의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가 나타나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민원 접수만큼이나 열심히 공부하던 영어가 좀처럼 늘지 않아 의기소침한 옥분은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민재를 본 후 선생님이 되어 달라며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부탁하기에 이른다. 둘만의 특별한 거래를 통해 결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의 영어 수업이 시작되고, 함께하는 시간이 계속될수록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게 되면서 친구이자 가족이 되어 간다. 옥분이 영어 공부에 매달리는 이유가 내내 궁금하던 민재는 어느 날, 그녀가 영어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영화는 김현석 감독이 전작인 영화 `스카우트`(2007)에서 보여준 장기인 웃음과 감동을 한층 더 진하게 보여준다.

스카우트는 5·18광주민주화운동를 코미디에 녹인 영화로 어찌 보면 전작 경험이 있기에 이번 영화를 깊은 맛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배우 나문희는 대사와 표정의 기본적인 요소로 울리고 웃게 한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푼수 같지만 서정적인 캐릭터를 그려냈던 나문희는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여기에 이제훈의 꼼꼼하고 완성도 높은 연기는 두 배우의 환상적 앙상블을 보이며 영화의 밀도를 높인다. 어느 것 하나 빠지거나 버릴 것 없는 영화다. 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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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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