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흐르는그곳골목길] ⑤ 옛 충남도청과 선화동 골목

대전 선화동 골목길에 자리한 오성 목욕탕.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이 곳을 다녀간 주민들도 많다. 
사진=주예지 수습기자
대전 선화동 골목길에 자리한 오성 목욕탕.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이 곳을 다녀간 주민들도 많다. 사진=주예지 수습기자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간다. 세상 속 사람도, 물건도, 공간도 변해가고 새로워 진다. 과거는 순식간에 잊혀져 간다.

변하는 삶에 지친 사람들은 옛 시간이 간직된 곳을 찾는다. 그 곳에 삶의 희노애락과 역사 그리고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 시간이 멈춘 곳이 있다. 바로 옛 충남도청과 선화동 골목길이다.

지하철 1호선 중구청역을 나와 중앙로의 시작 한가운데 옛 충남도청이 자리잡고 있다. 1932년 일제강점기 때 완공돼 2012년 12월 충남도가 내포신도시로 이전하기까지 80년간 행정의 중심지가 됐던 곳이다. 원래 충남도청은 공주시에 있었지만 1928년 대전역 준공과 더불어 대전이 개발의 중심지가 되면서 지금의 선화동 자리로 옮겼다. 대전역과 충남도청의 이전을 시작으로 대전은 근대도시로 성장했다.

지하 1층과 지상3층에 `ㄷ`자 형태를 한 옛 충남도청 건물은 등록문화재 제18호로 등록돼있을 만큼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건물 구석구석에는 지금은 보기 힘든 구조물과 풍경들로 이루어져 있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중앙계단에는 아치형 기둥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더하고 긴 복도마다 달린 조명과 샹들리에는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준다. 일제 통치의 중심지이자 그 시대의 삶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서려있을 공간이라 생각하니 가슴 한켠이 아려온다. 현재 옛 충남도청 건물에는 도시재생지원센터와 대전근현대전시관 등이 남아있다. 대전의 행정 1번지로 오랫동안 자리잡은 곳이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하나둘 떠나고 옛 것을 지키며 추억하는 공간이 된 것이다. 대전의 오늘을 만들어 준 건물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든든함이 느껴졌다.

옛 충남도청 후문으로 나와 대전시민대학을 지나면 선화동 골목이 나온다. 조각조각 붙어 있는 집들과 오래된 전신주, 그리고 몇 십 년째 그곳을 지킨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곳. 바로 선화동 골목길이다. 원래 선화동은 옛 충남도청의 활성화와 더불어 대전의 부(富)촌으로 불리던 곳이다. 도청이 생기면서 그 뒷편으로 고위 공무원들이 자리 잡았고 고급주택가, 유흥음식점, 여관, 술집 등 이 발달했다. 도청을 포함해 1990년대까지 대전시청, 법원, 검찰 등 주요 행정, 금융기관이 위치하며 행정·경제·문화의 중심지가 됐다. 대전일보 등 지역 신문사도 처음 선화동에 자리 잡았고 대전 MBC와 연합뉴스 대전·충남지사도 선화동에 한 때 둥지를 틀었었다. 부촌인 탓에 인근에는 중앙초등학교와 선화초등학교 등 명문학교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서며 둔산 신도시가 개발되고 기관들이 빠져나가면서 공동화 현상을 겪기 시작했다. 인구는 급격히 줄었고 역사를 간직한 오래된 집들도 이제는 원룸으로 바뀌며 옛 모습이 희미해져 가고 있다. 이 곳에서 40년 이상을 살아온 이모(62)씨는 "윗집, 아랫집 사람 모두 세종과 둔산으로 이사가고 남아있는 사람은 나 뿐"이라며 "오래된 주택들은 집 주인 없이 비어있는 곳도 많다"고 씁쓸함을 전했다.

선화동은 많은 것을 잃어버렸지만 동시에 예전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대전 역사의 탄생과 함께 한만큼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담겨있고 그 시대 영화가 배어있다. 층층이 나있는 계단을 오르고 좁다란 골목을 걸으면 삐그덕 거리는 오래된 철문과 담벼락을 마주한다. 조금이라도 눈을 감았다 뜨면 어릴적 친구가 달려올 것만 같은 풍경이다. 그 많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주택 앞 넓다란 정원과 다듬어진 나무들만이 당시 번화했던 주택가의 모습을 기억하게 할 뿐이다.

추억을 더듬으며 대전세무서 방향으로 걷다 보면 오래된 목욕탕이 나온다. 26년째 이 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김중월(56) 오성목욕탕 사장도 이 목욕탕이 정확히 언제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어릴적 부모님 손을 잡고 목욕탕을 찾았다는 손님들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돼 손자·손녀를 데리고 목욕탕에 온다고 하니 40년은 족히 넘은 것 같다고 짐작할 뿐이다. 김 사장은 "선화동에 살다가 다른 동네로 이사가고 나서도 목욕탕이 생각나 이 곳에서 목욕을 하러 오는 손님들이 있다"며 "이 곳에 오래 산 사람들에게는 목욕탕이 추억이고 그리움의 공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 선화동은 과거의 추억과 함께 새로운 미래를 그리고 있다. 최근 1-2년 사이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인들을 중심으로 선화동에 아지트가 마련됐다.

1년 전 선화동 골목길에 카페 `이유없는 공간`을 차린 이길희(34) 작가는 "대흥동이 임대료가 오르면서 선화동쪽으로 작업실을 옮기는 젊은 작가들이 몇몇 있다"며 "선화동은 대전의 시작점이라는 의미가 있는 동시에 조용하고 아직 임대료가 저렴해 젊은 작가들이 옮겨 온다"고 말했다. 현재 중구청은 옛 충남도청 주변을 기존 인프라와 연계해 특화된 문화예술 공간으로 조성하는 `선화동 예술과 낭만의 거리 조성 사업`을 진행 중이다. 오는 12월에 완료될 이번 사업으로 선화동 골목길의 기반시설이 정비되고 어린이 공원과 공공창작공간이 조성된다. 선화동이 다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가는 "선화동은 지금 역사와 변화를 지나는 과도기에 있는 상황인 것 같다"며 "개발을 통해 득도 있겠지만 임대료가 오르고 선화동의 옛 감성이 사라지거나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하지만 이 곳에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은 젊은 작가들이나 주민들이나 마찬가지 일 것"이라고 말했다. 주예지 수습기자

*취재협조 = 대전시 도시재생지원센터, 대전시 중구, 중구문화원, 대전광역시관광협회, (사)대전문화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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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선화동 옛 충남도청의 야경사진. 옛 전성기를 말해주듯 저녁이 되면 은은한 불빛이 도청을 밝힌다. 사진=대전시 제공
대전 선화동 옛 충남도청의 야경사진. 옛 전성기를 말해주듯 저녁이 되면 은은한 불빛이 도청을 밝힌다. 사진=대전시 제공
193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 옛 충남도청 사진. 지금과는 다르게 주변에 건물이 없이 도청 건물만 지어져 있다. 사진=대전시청 제공
193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 옛 충남도청 사진. 지금과는 다르게 주변에 건물이 없이 도청 건물만 지어져 있다. 사진=대전시청 제공
선화동 골목길 오래된 주택을 지키는 철문이 있다.
선화동 골목길 오래된 주택을 지키는 철문이 있다.
대전 선화동 골목길 층층대의 모습. 이 층층대 위는 1970-1980년 대전지역 고급 주택가가 모여있는 곳이었다. 사진=주예지 수습기자
대전 선화동 골목길 층층대의 모습. 이 층층대 위는 1970-1980년 대전지역 고급 주택가가 모여있는 곳이었다. 사진=주예지 수습기자
중구 선화동에 위치한 옛 충남도청 중앙계단의 모습. 정문으로 들어오면 볼 수 있다. 샹들리에와 아치형 기둥이 오래된 분위기를 더한다.
사진=주예지 수습기자
중구 선화동에 위치한 옛 충남도청 중앙계단의 모습. 정문으로 들어오면 볼 수 있다. 샹들리에와 아치형 기둥이 오래된 분위기를 더한다. 사진=주예지 수습기자
선화동 옛 충남도청 건물의 복도. 모더니즘 양식으로 절제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주예지 수습기자
선화동 옛 충남도청 건물의 복도. 모더니즘 양식으로 절제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주예지 수습기자

주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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