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피우지 않고 과일을 맺는 나무가 있을까. 무화과가 그렇다. 실제 무화과 꽃은 열매 안에서 피기 때문에 다만 밖에서 보이지 않을 뿐이다. 무화과는 열매처럼 생겼지만 속의 먹는 부분이 꽃이다. 열매처럼 생긴 껍질이 꽃받침이고 내부의 붉은 융털이 달린 것이 꽃이다. 무화과 열매는 열매인 동시에 꽃이다.

재미있는 것은 무화과 꽃들을 수정시켜 주는 아주 작은 벌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무화과나무 벌은 열매 속 빽빽한 꽃들의 수분을 위해서는 유일한 입구인 열매 밑 둥의 작은 구멍을 통과해야 한다. 그래서 보통의 나비나 벌들은 무화과 꿀을 따 먹을 엄두를 못 낸다. 다만 무화과와 공생하도록 특별하게 진화된 초소형 무화과나무 벌만이 열매 속으로 기어들어가 꽃들을 수정시키는 일을 한다. 이처럼 꽃가루를 옮기는 일은 벌 같은 곤충이 맡는다. 1억 5000만 년간 벌 같은 곤충은 꽃을 피우는 식물의 짝짓기를 돕는 몸종 역할을 해 왔다.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식물의 상당수가 벌을 매개로 해 꽃가루를 퍼뜨려 수분을 하고 종족을 번식한다. 인간의 먹거리 3분의 1, 지구상에서 꽃을 피우는 모든 식물은 벌과 수많은 꽃가루받이 곤충에 의해 수분된다. 그 가치만도 우리 돈으로 379조 원에 달한다.

벌의 종류는 꿀벌에서부터 땅벌, 뱀허물쌍말벌, 호박벌 등 10만 종에 달한다. 초목에 의지해 사는 모든 벌레는 잎과 껍질, 뿌리와 열매를 갉아먹는 등 해를 끼치지만 벌은 그렇지 않다. 오로지 꽃가루와 이슬 등만 먹는 지구상에서 유익한 곤충이다. 그런데 가을문턱에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무더위와 마른 장마로 온도가 높아지면서 벌들이 기승을 부린 탓이다. 벌 중에서도 가장 사납다는 `장수말벌`은 독성이 강해 위협적이다. 장수라는 이름은 그 무리의 곤충 중 가장 큰 종류에 붙여지는 것으로 장수말벌은 다른 말벌들까지 살상할 수 있는 강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다른 곤충도 씹을 수 있는 턱과 단단한 이빨, 몇 번이나 쏠 수 있는 독성이 강한 날카로운 침을 갖고 있다. 최근 5년간 벌에 쏘인 환자는 2만 3217명이나 된다.

지난해에는 17명이 벌에 쏘여 목숨을 잃었다. 벌은 인간과 식물에게 유익한 곤충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런데 장수말벌과 같은 위협적인 곤충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인류의 생명이 4년밖에 남지 않을 것이란 예언이 묘하게 오버랩 된다.

곽상훈 취재1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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