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통이 된 휴대폰을 바꾸었다. 바꾼 지 얼마나 되었다고 액정이 말썽이었다. 서비스 센터 직원은 내가 절전모드로 해 놓아서 생긴 여러 문제점들을 친절히 일러주고 나도 만족해서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분명히 남색 챙모자를 귀에 끼운 기억이 선명했다. 남색 챙모자는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엄마가 처음 우리집에 오셨을 때 셋이 커플로 샀던 모자였다. 남색 챙모자는 그리움을 불러오기도 했고 아픔을 치유해주기도 하는 물건 그 이상의 의미였다.

다음날 아침, 밤새 잠을 잘 잤는데도 머리가 띵하길래 근처 커피숍에 가서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싶었다. 나가려는데 현관에 있던 모자가 안 보였다. 어디 간 걸까? 그래 어제 휴대폰 가게를 갔다가 동네를 세 바퀴 산책한 뒤 서브웨이를 갔지. 거기까진 분명 있었다. 그 다음은 안경점엘 들렀지. 선글라스 알이 깨진 건 아주 작은 나사 하나가 빠졌기 때문이었다. 촌스런 사투리가 매력적이라고 치켜주는 여직원 덕분에 땀을 뻑뻑 흘리면서도 뭐라고뭐라고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남색 모자를 벗었다. 안경점에서도 모자가 있었던 거다. 다음은 어디였더라…. 곰곰 나의 행적들을 되새겼지만 망각의 구름은 이미 산을 넘은 지 한참이 되어 조각하나 남지 않았다는 자책을 할 때 즈음 중학교 앞 벤치에 잠깐 앉았다 일어섰던 기억이 떠올랐다. 오후 늦은 시간에 분명 학교 담장을 보고 앉았으니 일인용 벤치가 맞는데 남색 챙모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혹시나 해서 근처 놀이터와 토란대가 자라고 있는 남의 텃밭까지 들여다봤다. 심지어 지나가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머리에 얹힌 모자란 모자는 낱낱이 살펴보는 내 눈을 내가 의식하고 있었다. 하얀 챙모자, 파란 챙모자가 지나갔다. 그런데 저건 굴곡이 덜 하다. 파란 챙모자, 저건, 맨 끝에 줄무늬가 있다. 그래봐야 내 것이 아니었다. 구름 없이 맑은 하늘과 짙은 녹음의 풍경이 잠시 나를 달래주었다. 모자는 찾을 수 없었다. 허탈한 맘을 누르고 집으로 돌아왔다. 냉수나 한 잔 마셔야지 하고 싱크대 옆자리에 있는 정수기에 다가가는 순간 나는 망연자실했다. 파란 챙모자가 거기에 있었다.

나에겐 얼마나 많은 모자들이 있었나. 24시간 내 옆을 지키는 200㎖의 분홍 보냉병, 빈둥거릴 수 있는 잠깐의 시간, 그 시간들이 허락하는 공간, 각자의 일을 묵묵히 해 내는 내 간과 심장, 그 밖의 장기들, 교복을 입고 등교가 늦었다고 이리저리 뛰는 딸, 가까이 사는 벗과 스승까지 모자들의 향연이다. 모자들이 항상 곁에 있을 거란 착각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

`가까이 있는 것은 먼 것이고 먼 것은 가까이 있는 것이다`라는 레비스트로의 말을 새긴다. 모자는 너무도 가까이 있었다는 것을 혼이 쏙 빠진 다음에야 알아버린 것이다. 유하정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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