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보통 생각이 크게 바뀌거나 결심을 다잡으려 할 때, 머리 스타일을 바꾸거나 아주 짧게 깎아 변화를 시도한다. 꼭 ‘삭발’에 출가라는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듯이 성적이 부진한 운동선수가 어느 날 갑자기 스포츠머리나 머리카락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머리를 짧게 깎고 경기에 나설 때, 혹은 중요한 시험을 앞 둔 수험생이 까까머리로 공부에 열중하는 모습은 자신의 나태함을 바로잡기 위한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또 단발령 때 우리 조상들이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를 외치며 손발은 자를지언정 머리털은 자를 수 없다고 완강하게 버텼던 것은 신체에 가해지는 혹독한 박해로 유교 윤리에 바탕을 둔 것이었고, 60년대 초 가난한 삶에 지쳐있던 보릿고개 시절 자식들의 굶주림을 보다 못해 머리카락을 자른 후 그것을 팔아 생계에 보탬을 준 어머니의 삭발모정(削髮母情)에는 한없는 자식 사랑이 담겨있다.

반면 요즘 시위 현장에서 이따금씩 볼 수 있는 삭발은 비록 육체적인 고통은 수반되지 않지만 타인에게 자신의 결연한 의지와 간절함을 호소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시위 참가자뿐만 아니라 이 광경을 지켜보는 주위 사람들에게도 안타까움을 넘어 숙연함마저 들게 한다. 그러고 보면 삭발은 누가, 어디서, 왜 하느냐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는 또 다른 의사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문행 전국공무원노조 세종·충남지역본부장과 백영광 사무처장이 지난 6월 16일 충남도의회 앞 광장에서 삭발식을 가졌다. 형형색색 피켓을 든 많은 시위 참가자들 앞에서 굳은 표정으로 긴 머리를 싹둑싹둑 자른 후 붉은색 머리띠를 동여매고 본회의장으로 향했다. ‘충남도의회 행정사무감사 및 조사에 관한 조례안 일부개정안’을 최종 의결하는 날 이들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처사라며 반대를 외쳤지만 이 조례안은 일사천리로 가결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충남도의회는 2014년 기초단체 공무원들이 매년 6차례의 중복 감사에 따른 업무공백과 민원서비스 질 저하 등을 이유로 스스로 이 조례를 폐지한 후 3년이 지나 갑자기 다시 행정감사를 하겠다고 조례를 개정한 것이다. 비록 도의회가 법제처 등의 유권해석에 따랐고 기초의회의 기능과 역할을 침범하는 것이 아닌 시·군 위임사무 중 국·도비 관련 예산에 대해 면밀히 살피기 위한 것이라고 강변하지만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일선 시·군 공무원과 기초의회 의원들은 도의회 행정감사는 자치권 침해는 물론 기초단체장과 공무원 길들이기이고 자신들의 영향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각종 민원 해결을 위한 사심에서 출발한다며 강경투쟁에 나섰다. 특히 일부 기초의회는 도의원 재량사업비를 전액 삭감하는 초강수로 맞섰다.

그러던 와중에 충남도의회가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지난 4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고 감사의 효율성과 진정성을 높이기 위해 올해는 행정감사를 실시하지 않고 내년으로 미루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누구의 말도 귀담아 듣지 않고 기세등등하게 밀어붙였던 도의회가 이렇다 할 명분 없이 슬쩍 발을 뺐으니 체면만 구긴 셈이 됐다. 일부에서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잠재적 정적(政敵)인 시장·군수 견제용으로 카드를 꺼내 들었다가 거센 반발과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려 백기를 든 것 아니냐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삭발 투쟁으로 맞서 온 공무원노조 등은 행정감사 유보가 아니라 조례를 원래대로 재개정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내년 11대 도의회에 부담만 안긴 꼴이 됐으니 도의회로서는 할 말이 없게 됐다. 어느 운동선수의 스포츠머리나 수험생의 까까머리는 응원의 박수로 충분히 격려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충남도의회 앞마당에서 삭발식은 더 이상 있어서도 안 되고 보고 싶지도 않다. 또 다시 그런 일이 없길 바라며 그러기 위해서 도의회는 시·군 행정감사에 대한 좀 더 명확한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 충남도의회의 진짜 속내가 궁금하다.

송원섭 충남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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