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차 핵실험에 성공한 북한 김정은 노동위원장이 달콤한 꿈에 젖어 있는 모양이다. 창건기념일인 99절에 국제사회가 예상한 도발 대신 핵과학자와 기술자들을 위한 연회를 벌였다. 어제는 자신 명의로 허리케인 `어마` 피해를 입은 쿠바에 위로전문을 보냈다. 변변한 구호물자 하나 지원하지 못할 형편에 "깊은 동정과 위문을 보낸다"며 중남미 외교전을 펼쳤다. 새 대북 제재안에 대한 반응도 여유롭다. `공화국 정부 성명`보다 격이 낮은 `외무성 보도` 형식을 취해 `전면 배격`하는 데 그쳤다.

핵을 손아귀에 다 넣었다는 자신감이다. 이유가 짐작된다. 중국과 러시아가 내 편이라는 걸 거듭 확인했다. 두 나라는 대북 제재안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 2375호를 물 타기해 북 정권 지키기에 마음을 맞췄다. 김정은 체제의 생명줄인 `유류`를 제재 대상에 처음 포함했다곤 하나 독재자 남매를 겨누진 않았다. 유류의 경우 상당 부분 음성적으로 공급 받아온 터다. 또 밖에서 규모를 알 턱이 없으니 7차 핵실험까지 견딜 수 있다고 판단했음직하다. "끝 볼 때까지 더 빨리 가겠다"는 선언이 나올 만하다.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은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들었다. 그나마 믿었던 미국은 `거부권` 무기를 지닌 중·러와 어정쩡하게 타협했다. 북핵 위기 와중에 "한미FTA(자유무역협정) 파기" 운운한 트럼프다. 뒤통수를 맞고도 기대를 품은 게 잘못이다. 결국 중·러가 대북 제재로 가는 `운전대`를 잡았다. 유엔은 시진핑과 푸틴에 막혀 전면적인 대북 원유금수 조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북핵이라는 폭주기관차는 속도를 높일 타이밍을 엿볼 것이다.

청와대가 제재안에 높은 점수를 준 건 국민 눈높이와 거리가 있다. 청와대는 "유엔이 결의안을 빠른 시간 내에 만장일치로 채택한 것을 높게 평가한다"고 했다. 물론 제재 수준이 높아졌고, 유류 제재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의미가 없지 않다. 속을 들여다보면 근본적 해법이 아니라는 게 한계다. 무기력한 정부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가슴은 답답하다. 대화나 협상을 병행 해야겠지만 그 돌파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 형국에서 고통스런 선택지를 떠올리게 되는 요즈음이다.

대한민국이 핵 인질로 전락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른바 `공포의 균형` 전략을 모색할 시기다. 현실적으로 자체 핵무장이 어려운 만큼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 재반입을 공론화하자는 얘기다. 마침 전술핵 재배치 주장이 미국 일각에서 제기되는 건 주목해야 할 변화다. 미국 측의 동의가 가장 큰 장애물인 상황에서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은 최근 "전술핵 재배치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원해진 한미동맹의 가치와 신뢰를 회복해 전술핵 재반입 논의를 진전시켜야 할 중대한 시점이 아닐 수 없다.

손자는 전쟁을 잘 하는 방법으로 먼저 적의 전략을 치고, 그 다음에 적의 외교 관계를 치는 걸 들었다. 전술핵 재배치는 공포의 균형으로 김정은의 대남 전략을 무력화할 수 있는 유용한 방안이다. 전술핵을 지렛대 삼아 대북 제재에 미온적인 중국의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어낼 수단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이 중동국가를 쥐 잡듯 하는 건 핵을 가졌기 때문이다. 서로가 핵을 보유한 동·서독이 통일의 길을 열고, 인도와 파키스탄이 상호 억제력을 바탕으로 오랜 적대 관계를 청산해나가는 건 무얼 시사하는가.

사드에도 난리를 치는 중국의 반발이 또 하나 걸림돌이지만 더 큰 장벽은 국내 여론이다. 반대론자들은 "전술핵을 재배치하면 북한의 핵폐기를 요구하지 못하는 자기 모순에 빠진다"는 논리를 앞세운다. 안 그래도 사드 배치에만 걸린 시간이 426일이다. 그러면서 김정은이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거란 사실엔 눈을 감는다. 그제 안보리 결의안은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9번째로 채택된 것이다. 당근과 채찍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동안 북한은 수소탄까지 손에 움켜쥘 상황에 이르렀다. 전술핵 카드를 만지작 거려야 하는 처지로 내몰린 건 우리 스스로에서 비롯됐다는 인식이 논의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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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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