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찾은 최나경 플루티스트

10개월여 만에 고향인 대전 무대에 다시 섰다. 장 피에르 랑팔, 제임스 골웨이 등 세계적 플루티스트 10인 명단에 오르며 세계적 거장 반열에 오른 플루티스트 최나경(34).

그는 대전시와 호주 브리즈번시가 공동주최하고 한국과 미국, 일본 등 아시아·태평양 120여 개 도시의 시장과 석학·CEO 등 1500여 명이 참석한 아시아태평양도시정상회의(APCS)의 폐막식에 올랐다. 한국과 대전 대표로 최나경은 폐막 공연에서 피아노 반주 없이 플루트로만 공연을 펼쳤다. 플루트 솔로를 위한 `위대한 기차 레이스` 등의 곡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찬사가 쏟아졌다. 이제는 오롯이 `최나경`, `재스민 최`로 플루티스트의 삶의 궤적을 그려가고 있는 그를 만났다.

빨간 플루트백을 어깨에 메고 인터뷰 장소에 온 최나경은 여전히 싱그러웠고, 아름다웠다. 함박 웃음을 지으며 인사하는 그에게선 이제는 좀 더 자신의 삶을 즐길 줄 아는 여유도 느껴졌다.

지난해 대전시 홍보대사로 위촉되면서 그는 고향인 대전에서 더 자주 공연을 한다. 지난 해 말에는 사회복지시설을 찾아 `깜짝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대전에서 사랑을 받고 성장한 만큼 대전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어요. 지난해 사회복지시설을 찾아 공연을 한 것도 그래서 흔쾌히 나선 거고요. 플루트 연주를 하면 아이들이 소리지르고 춤추고 하면서 즐기는 순수한 모습이 너무 좋았던 공연이었어요."

말을 허투루 내뱉는 법이 없다. 적당한 단어를 골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의미를 정확히 전달했다. 악보에 그려진 음표처럼 리듬을 타는 그의 이야기는 플루트 연주를 듣는 것처럼 행복했다.

대전예술의전당은 올해 말 빈심포니오케스트라 초청 연주회를 연다. 최나경과의 협연은 일정이 맞지 않아 아쉽게 볼 수 없다. 최나경은 "협연 이야기가 나왔는데 도저히 스케줄이 안됐다"며 "12월과 내년 1월에 대전에서 두 번의 공연이 있으니 아쉬움을 그것으로 달래야 할 듯싶다"고 미소지었다.

2012년에서 2013년까지 빈심포니오케스트라 수석으로 보낸 1년은 최나경의 황금기였다. 무려 241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수석을 따냈지만 복합적인 이유로 그는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 상처는 깊었다. 하지만 아물지 않는 상처는 없다. 오케스트라에 소속된 최나경이 아닌, 이젠 그의 이름 세 글자만 갖고 공연에 오른다. 프리랜서로 새출발을 하는 그에게 수많은 오케스트라에서 입단 제의를 했지만 그는 모두 거절했다.

"자기 소개를 할 때 전 어디에서 일하는 누구입니다라고 타이틀을 말하면서 소개를 해왔고 그걸 저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는데, 이젠 "재스민 최에요."라는 거 하나로 말해요. 스스로 더 당당해지고 행복해지더라고요."

신시내티심포니 부수석 주자로 6년, 빈심포니 수석으로 1년을 지내고 솔리스트로 세계 곳곳을 다닌 지 이제 4년이 됐다. 솔리스트의 인생은 오선지 위에 그려져 있는 음표처럼 빡빡했던 삶에 쉼표를 줬다. 예전에는 몰랐던 것들이었다. 최나경은 프리랜서로 솔로 공연을 하면서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공연 기회는 오케스트라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아졌다. 그러면서도 휴식도 짬짬이 챙긴다. 파보 예르비가 이끄는 페르누 페스티벌과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리는 모스틀리 모차르트 페스티벌에는 정기적으로 참여한다.

빈심포니를 나와 프리랜서로 협연 및 리사이틀에 나서는 그에게 동료 음악가는 `재스민 최를 위한 협주곡`을 만들어 그에게 헌정하기도 했다. `최나경`의 가치가 얼마인지 새삼 깨닫게 된 계기였다.

오스트리아 브레겐츠에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최나경은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음악`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브레겐츠에 있는 친구들은 모두 제각각의 직업이 있어요. 그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객관적이면서 단순한 평을 해주더라고요. 음악의 기본이 무엇인지 깨닫고 있어요." 그는 요즘 고전 레퍼토리를 공부하고 있다.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오스트리아에서 마스터 클래스도 진행했다.

"10여 년 전에는 플루티스트가 돋보이는 때가 아니었어요. 하지만 이제 김유빈이나 손유빈처럼 전세계적으로 뛰어난 플루티스트가 나오고 있죠. 후배들이 가는 길에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서 시작한 게 마스터 클래스예요."

후배들은 플루트를 배울 때 `최나경 테크닉`이라고 불리는 플루트 테크닉을 배운다. 오보에 등에 쓰이는 `순환호흡법`을 최나경이 플루트에 적용한 것으로 좀 더 긴 호흡으로 플루트 연주를 할 수 있게 됐다. 최나경은 스스로 터득했던 것을 후배들이 좀 더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알려주고 싶은 게 많다.

최나경의 공식 홈페이지에 보면 이미 내년까지 스케줄이 꽉 차 있다. 내년 1월에만 23일엔 일본 투어, 24일은 오스트리아 빈, 25일은 독일 공연 등이 빡빡하게 잡혀 있다. 그래도 최나경은 행복하다.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공연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느냐고. 저는 제 음악을 들려주는 무대가 있다면 어디든 서요. 음악은 제 인생이고 제가 행복하니까요." 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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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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