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흐르는그곳골목길] ④대전 동구 대동산1번지, 대동천 벽화거리

철도관사에 살고 있다던 한 주민이 대동천변에 그려진 벽화를 보며 걸어가고 있다. 이호창 기자
철도관사에 살고 있다던 한 주민이 대동천변에 그려진 벽화를 보며 걸어가고 있다. 이호창 기자
진한 사람 내음이 곳곳에서 풍긴다. 우리에게 잊혀진 `이웃사촌`이란 친근한 단어도 생각나게 한다.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있는 대전 동구 대동 산1번지 얘기다.

대전 동구 자양동 성당과 대동종합복지센터 인근에 폭 넓게 자리잡은 이 곳은 높다란 고지대에 좁고 가파른 골목길이 사방으로 뻗었다. 고지대를 오르기 위한 자동차 엔진음은 쉼 없이 울린다. 차를 타고 언덕을 올랐지만 숨이 턱밑까지 차는 기분이 드는 이유는 뭘까.

산1번지의 골목길은 마치 미로의 모습과도 흡사하다. 자칫했다간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한 겨울 눈이라도 내린다면 빙판길이 지기 일쑤다. 요즘 만들어진 길처럼 깨끗하거나 넓지는 않지만 정겨움이 와닿는 공간이다. 고작 차 한 대가 지나갈 만한 골목길이지만 이 곳엔 우리들의 삶이 녹아 있다.

이 곳은 한국전쟁 피란민이 모여 살면서 1950년대 후반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의해 조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때문에 곳곳에 사람들의 손때를 확인할 수 있다. 작지만 형형색색의 색깔을 자랑하는 집들을 거닐고, 평상에서 한가로이 잡담하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모습을 볼 때면 마치 고향집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산비탈 아래로 빼곡히 들어선 판자촌 형태의 주택 담벼락엔 화사한 벽화가 눈길을 모은다. 금방 쓰러질 것 같은 낡고 오래된 주택 수천 채에 수년전 예술인들이 모여 화려한 그림을 그려놓은 것이다. 예술가들은 이 곳을 `벽화마을`로 변신시켰다. 저소득층과 노인세대가 많이 살고 있는 빈곤동네, 대전의 마지막 남은 달동네라는 오명을 안고 살던 대동이 `살고 싶은 마을`로 변모한 것이다.

벽화마을을 지나 작은 동산에 이르면 대전시내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하늘공원을 만날 수 있다. 이 곳에서 대전시내를 바라보면 장관이다. 맑은 날이면 둔산과 멀리는 유성까지도 훤하게 볼 수 있다는 게 인근 주민의 설명이다. 얼마전 생긴 망원경으로 보는 대전시내의 모습은 덤이다. 공원에 우뚝 솟아있는 풍차는 하늘공원의 랜드마크이자, 연인들이 특별한 데이트 장소로 꼽힌다. 목각이었던 풍차를 최근엔 각양각색의 타일을 부착해 볼거리를 더했다. 하늘공원을 한 바퀴 둘러보면 마치 동화 속 한 모습과 이국적인 분위기가 연상된다.

이러한 입소문에 연인 및 가족 관광객들이 찾아 이색적인 풍경을 카메라 앵글에 담는다. 인근 식당가에도 관광객들의 방문이 늘어나 상권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주민들도 입소문을 타는 마을의 변화는 반갑기만 하다.

"하늘공원 마을에는 높은 빌딩은 없지만 벽화나 꽃동산 등 대도심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소박한 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예요. 이 곳이 있어 마을이 점차 변하고 있는 것 같네요."

이 곳에서 40여 년을 거주했다는 주민 최모(68) 씨는 동네의 변화를 새삼 느끼고 있다. 그는 "어두컴컴했던 골목이 그림으로 인해 환하게 바뀌어 웃음을 짓게 한다"며 "하늘공원은 주민들에게 편안하고 볼거리 많은 휴식처가 됐다"고 말했다.

벽화마을과 하늘공원이 유명세를 타면서 이 마을은 `한국의 아름다운 골목 비경`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산 중턱에 자리잡은 대동 산1번지의 유례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동교 동쪽으로 지금의 대동오거리 부근에 있었던 마을은 조선시대에도 대동(大洞)이라는 지명이 사용됐다. 한밭들의 동쪽에 마을이 있었으므로 그리 불려온 것이다. 이 마을은 조선시대 큰 길이 있었던 곳이라 마을의 역사도 깊다. 마을에는 자양천이 흐르고 대동천이 흘러 수원(水源)만큼은 풍부했다. 하지만 냇물이 반듯하고 급류여서 비가 올 때마다 범람해 전답(田畓)은 물론이고 마을까지 자주 수혜를 입었다. 그래서 비교적 높은 지대인 현재의 대전여고, 한밭여중 자리에 마을주민들이 거주했다. 이 곳에서 주민들은 산지를 개간해 밭농사로 목화, 콩, 밀, 보리 등을 경작해 어렵게 살아온 것으로 전해진다.

대동 산1번지의 벽화길은 자연스럽게 아래동네인 대동천(大東川)으로 이어진다.

대동천은 1926년 3월 구역확장으로 현재의 대동 등 외남면 일부를 편입한 곳이다. 대전도시계획위원회가 발족하면서 대전의 도시계획사업을 실시한 곳이다. 판암천 줄기를 가로질러 경부선 철도 동쪽으로 용운천, 자양천을 합해 소제호를 반으로 나눴다. 가양천과 합해 보문교에서 대전천과 합해지도록 만들었다. 대동천은 인공하천이란 얘기다. 이 때문에 1928년 지도에 처음으로 대동천의 모습이 등장했다. 1910년대 말 지도에는 대동천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이 곳 역시 상당한 눈요깃거리가 있다. 철갑교와 가제교 사이에 옹기종기 밀집한 노후주택들 사이에 예쁜 그름이 그려져 있다. 정면으로 마주보는 집들의 벽화를 둘러보는 재미는 일품이다. 마주보고 있는 한쪽 길은 170m, 또 다른 한쪽은 230m의 거리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벽화가 그려져 있는 총 거리만 해도 400m에 달한다.

어느 누가 집주인인지 참으로 궁금하다. 마치 동화 속 주인공이 대문을 열고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벽화는 낙후된 건물을 살리기 위해 2015년 동구가 지역민과 함께 그려넣었다. 대전·충남·북 미술대학생 수백명을 불러 각자의 개성을 표현토록 했다. 더욱 정감가는 것은 개성이 넘치는 담벼락이다. 어느 집은 허리춤에, 어느 집은 키보다 높게 쌓여있다.

철갑교 초입에는 우암 송시열 선생이 소제동 정면에 보이는 보문산의 형상이 음흉하다고 흉한 것을 없애고 질병과 재앙을 막기 위해 세운 돌장승도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거주하는 주민들도 형형색색 꾸며진 담벼락이 정감이 간다.

이 곳에서 만난 한 주민은 "이 곳은 재개발지역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택이 노후화돼 을씨년스러운 곳이었다"며 "벽화가 그려지고 난 뒤에는 그렇게 노후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동네주민으로 관광객들이 온다는 건 반가울 따름이다. 가장 기쁜 것은 내가 사는 동네가 화사하게 변화됐다는 것이다"고 웃으며 말했다.

* 취재협조 = 대전 동구

이호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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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천변길 주택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 이호창 기자
대동천변길 주택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 이호창 기자
하늘공원 입구에 그려진 벽화들. 이호창 기자
하늘공원 입구에 그려진 벽화들. 이호창 기자
하늘공원 입구에 그려진 벽화들. 이호창 기자
하늘공원 입구에 그려진 벽화들. 이호창 기자
하늘공원 안에 있는 풍차. 이호창 기자
하늘공원 안에 있는 풍차. 이호창 기자
최근 유명세를 타고 있는 대전 동구 하늘공원에서 11일 오후 바라본 대전시내의 모습. 사진은 휴대폰의 파노라마 기능으로 연출했다. 이호창 기자
최근 유명세를 타고 있는 대전 동구 하늘공원에서 11일 오후 바라본 대전시내의 모습. 사진은 휴대폰의 파노라마 기능으로 연출했다. 이호창 기자
최근 유명세를 타고 있는 대전 동구 하늘공원에서 11일 오후 바라본 대전시내의 모습. 사진은 휴대폰의 파노라마 기능으로 연출했다. 이호창 기자
최근 유명세를 타고 있는 대전 동구 하늘공원에서 11일 오후 바라본 대전시내의 모습. 사진은 휴대폰의 파노라마 기능으로 연출했다. 이호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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