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안전이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반갑지 않은 모습으로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외국여행을 가더라도 어떤 나라는 안전하니 여행을 가도 좋고 어떤 나라는 치안이 불안하여 피하는 것이 좋다든가… 또한 공산품의 유해물질 검출에 이어 살충제 계란 논란 등 공장에서부터 식탁의 안전문제까지 생활 주변에서 안전이라는 단어를 쉽게 찾을 수 있듯이 안전에 대한 관심 또한 매우 많아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사고와 이슈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어 오랫동안 재해예방단체에 몸을 담고 있는 필자로서도 매우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사회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눈부신 압축성장의 과정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기까지 많은 것을 얻었지만 반면 사회의 여러 단면에서 그 만큼의 그림자도 드리웠음을 부정할 수 없다.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는 수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부끄러운 자화상을 가지고 있고, 이는 영국이나 미국, 일본 등 선진국보다 3배에서 10배 이상 사망자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이 산업재해로 인해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하는 근로자와 가족의 고통은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그 피해가 엄청나고 그에 따르는 직간접손실도 연간 19조 원정도로 서울시 1년 예산과 비슷한 규모에 다를 정도이다.

정부가 그간 선진국의 좋은 정책과 제도를 도입하여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 없는 안전보건관련 제도를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년째 산재예방 정책의 효과가 뚜렷하지 않아서 답답할 뿐이다. 이러한 문제는 정부의 딜레마이기도 하지만 산업재해를 예방하는 일을 하고 있는 필자 역시 수년째 동일한 고민을 하고 그 답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OECD가 15개 회원국 근로자를 대상으로 가치관, 의식 수준 등을 조사해 5년 단위로 발표하는 세계가치관조사를 인용한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취업자의 안전의식 국제비교`라는 논문에서 우리나라 근로자의 안전 중시도(41.2%)는 12위, 안전 체감도(68.8%)는 13위로 주요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인 것으로 평가되어 일부나마 문제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들은 상대적으로 안전 체감도가 낮은데도 불구하고, 안전 중시도 또한 낮아 안전 불감증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즉 안전을 잘 느끼지도 못하면서 안전을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는 우리 국민의 생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선진제도와 정책, OECD 회원국, 국민소득 3만 달러에 근접해도 선진국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산업재해로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서강대학교 철학과 최진석 교수는 선진국이란 `생각을 선도하는 나라` 즉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상상력을 기준으로 본다고 정의했다. 지금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거의 모든 혼란은 이제 우리가 남의 생각을 모방하는 것만으로는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사고가 나면 안전 불감증, 준비 소홀, 교육훈련 부족이 원인이라고 하는데 왜 우리는 그것 들을 실천하지 못했을까? 이는 다름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보이지 않는 것, 오지 않은 것, 만져지는 것 들`에 대한 사람의 생각을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먼저다`는 국정철학을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는 지난 8월 28일 행정안전부 업무보고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제1 의무이며 국가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고 강조한 바 있으며, 모든 일하는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고 산업재해를 획기적으로 감소시키기 위한 중대 산업재해 예방대책을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것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나 자칫 제도나 정책으로만 포장되지 않고, 사람의 생각을 담을 수 있고 생각을 관리할 수 있는 예방대책이기를 기대해 본다. 김영환 대한산업안전협회 충남서부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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