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1897년 `자살론`이라는 책을 통해 자살이 개인적 행위로만 이해돼서는 안되는 사회적 현상이며 자살의 원인 중 많은 부분이 개인을 둘러싼 사회적 힘과 사회적 결속 정도에 있다고 설명했다. 즉 자살의 유형을 분석해보면 특정한 범주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자살 가능성이 높으며, 사회적 결속이 부족하거나 과도할 때 자살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뒤르켐의 이 저술은 우리가 오늘날 사회학이라 부르는 학문의 기초를 닦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세계 OECD 국가들 중에서 자살률 1위를 오랫동안 지속하는 우리나라에서 `자살은 사회적 현상`이라는 이 오래된 명제가 적절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자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대답이 정직할 것 같다. `자살은 사회적 현상`이라는 명제를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1년에 1만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명을 버리는 일이 벌어졌을 때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사회적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해서 `사회적 대응방법`을 강구해서 적절한 대책이 시행됐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자살률 1위를 유지하고 있는 기간이 10년이 넘도록 국가적인 차원에서 혹은 지역적 차원에서 명확하게 `사회적 원인`이 분석되지도 않았고 `사회적 대책`이 시행되지도 않았다는 것은, 여전히 자살은 한 사람의 개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사회가 나서서 해결하는 것이 어렵다는 시각이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이라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물론 그동안 높아가는 자살률을 낮추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국적으로 설치된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자살예방사업을 시행하도록 하고, 24시간 운영되는 자살예방·정신건강 상담전화를 통해 위기상황에 대응하도록 하고, 경찰 및 소방에서도 자살 위기자 및 시도자에 대한 대처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고, 자살 시도로 응급실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사후관리해서 재시도를 막도록 노력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들이 강구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011년까지 10년 넘게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계속 증가하기만 했다. 이후 주춤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나 아직까지 근본적인 변화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다행히 최근 보건복지부가 그동안 정신건강정책과의 직원 두 명이 담당하던 자살예방 업무를 위해 별도의 `자살 전담과`를 설치해 조직과 인력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것은 사회적 현상인 자살에 보다 강화된 `사회적 대응`을 하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져서 매우 반갑고 고무적인 일이다. 이를 통해 자살을 막을 수 있는 정신건강 관련 서비스가 확대될 뿐 아니라 자살의 원인에 대한 `사회적 분석과 해결방안`이 강구되고 시행되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매년 7508억 원을 쓰고 있다는 일본의 자살예방 예산에 비해 고작 99억 원을 사용하고 있었던 자살예방 예산도 획기적으로 늘어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변화에 발 맞춰 대전시도 자살 문제의 사회적 중요성을 보다 깊이 인식하고 자살 예방을 위한 보다 진일보된 관심과 투자에 나서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래서 한 사람의 시민이라도 소중한 생명을 허무하게 포기하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전국적인 자살률이 감소 추세를 보인 2014·2015년에도 대전에서는 연속해서 자살률이 증가해 전국 평균보다 높은 자살률을 보이는 등, 자살 문제와 관련해서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매년 9월 10일은 WHO가 제정한 세계자살예방의 날이다. 이 날에는 생명의 소중함과 자살문제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전세계적으로 기념식을 갖고 관련 행사가 진행된다. 시민들에게 자살예방의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할 소중한 기회가 된다. 대전시에서도 매년 다양한 행사를 개최해왔으며, 올해도 기념식과 문화 공연 등 행사들이 예정돼 있다. 이런 일들이 일회성의 행사에 그치지 않고 시민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대전시의 관심과 노력이 시민들에게 전달되고, 앞으로 더 확대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유제춘 대전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장 을지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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