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의 심화, 급격한 인구변동, 산업구조의 혁명적 변화 등 수 없이 많은 요인들이 우리 삶과 국가의 운명을 뒤흔들고 있다. 기존의 사회질서와 경쟁규칙은 힘을 잃어가고, 치열한 생존 경쟁은 너무나 쉽게 갈등으로 전환된다. 새로운 갈등이 묵은 갈등과 뒤엉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문제는 해소되지 않은 채 장기간 방치되고 있다.

갈등상황에서 이를 끝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힘(force)에 의한 갈등 해소(채conflict settlement, 解消)다. 힘은 `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말하고, 해소는 `우월한 힘을 이용하여 어려운 일이나 문제가 되는 상태를 없애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힘은 강한 쪽에서 약한 쪽으로 작용하고, 약한 쪽의 선호나 의사는 무시된다.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갈등의 권위적 해결이다. 둘째는 법에 의한 심판이다. 법에 의한 심판은 공신력을 가진 제3자에 의해 이뤄진다. 객관적 기준에 의한 문제해결이라는 점에서 힘에 의한 갈등해소와는 차이가 있으나, 결정이 당사자의 선호나 의사와는 관계없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힘에 의한 갈등해소와 별 차이가 없다. 정치적으로는 법에 의한 지배 즉 법치(法治)를 의미한다. 셋째는 합의(consensus building, 合議)에 의한 갈등 해결(conflict resolution, 解決)이다. 당사자간 논의를 통해 상호 동의(agreement, 同意)할 수 있는 수준을 찾아내는 과정(過程)을 말한다. 합의가 위의 두 가지 방식과 다른 점은 이해관계자 모두가 문제해결에 직접 참여하여 해법을 스스로 찾아간다는 점이다.

힘의 의한 갈등해소는 문제를 신속정확하게 목적의식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힘을 가진 쪽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방식이고, 반발효과(backlash effect)를 불러올 수 있다. 법에 의한 문제해결은 비교적 공정하고 집행의 강제성은 탁월하나, 자신의 문제를 제3자에게 의존하는 방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결론을 얻기 어렵고,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합의에 의한 문제해결은 당사자의 만족도는 높일 수 있으나, 말 그대로 당사자가 스스로 논의를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합리적인 논의 능력이 있을 경우에만 의미를 가진다.

갈등해결의 측면에서 민주화란 힘에 의한 문제해결로부터 법에 의한 문제해결, 즉 권위주의에서 법치주의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는 갈등해결의 측면에서 또 다른 한계에 직면해 있다. 법적 문제해결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최근 우리나라는 일본에 비해 고소․고발 건수가 인구 대비 7배나 많고, 고소․고발 건수 가운데 무고죄 판결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으며, 당사자간 조정이나 타협에 의한 해결 비율은 현저히 낮다.

합의를 통한 문제해결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선 합리적인 논의를 어렵게 하는 요소를 찾아내어 이를 하나씩 제거해 가는 훈련을 해야 한다. 첫째, 이해관계자를 배제시켜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내용적으로 동의해도 자신이 배제된 논의 결과를 수용하지 않는다. 둘째, 정보 제공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 정확한 정보가 사람을 균형있고 현실적으로 만들고, 합의에 이르는 길을 열게 한다. 셋째, 진행이 공정해야 한다. 갈등 상황에서 사람들은 합의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로 `공정하지 못한 진행`을 꼽고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넷째, 모든 것을 얻으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자신은 어떤 양보도 하지 않으면서 상대에게 자신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할 것을 요구한다면, 상대는 당신이 논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의사가 없다고 여길 것이다. 마지막으로 위의 모든 것이 가능하려면 상대가 나와 동등한 인격체이고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민주주의 기본원칙을 수용해야 한다.

합의에 의한 문제해결은 여전히 우리에게 여전히 낯설고 강력한 도전이다. 합의에 의한 문제해결은 남이 대신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그런 태도와 역량을 가질 때만 현실이 될 수 있다.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모두의 변화는 불가능하다.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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