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파미르고원이 위치한 타지키스탄은 일반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국가이다. `파미르고원` 하면 `세계의 지붕`이라는 말을 연상하지만 이 단어가 머릿속에 남아 있어도 그 어느 누구도 파미르고원에 대해 알려고도, 물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일상 대화에서 과감히 잊힌 곳이다. 사실 오지를 탐험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버킷리스트에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일상의 생각 속 저 깊은 구석에서 끄집어 낼 필요도 없는 장소이다. 그러나 어느 날 누군가에게 가까이 다가올 때가 있다. 누군가의 버킷리스트에 있었던 장소가 바로 나에게 다가왔다.

19세기 중앙아시아의 파미르 고원을 탐험한 러시아의 탐험가들은 이 지역을 세상과 동떨어져 고립돼 있는 우주의 달보다도 더 멀리 있는 곳이라고 했다. 얼마나 험하고 긴 여정이었기에 이와 같은 표현을 했는지 이곳을 다녀오면 이해가 될 수 있다. 타지키스탄은 국토의 93%가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대표적인 산악 국가이다. 파미르 고원은 평균 해발 고도 4000m 이상에 있고, 같은 줄기를 이루며 약 10여 갈래로 복잡하게 뻗어 있는 여러 산맥들과 고원들이 만들어낸다. 산맥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들이다. 봉우리 4개는 7000m급이고 최고봉은 7495m의 이스마일 소모니 봉이다. 7000m급 봉우리가 4개나 있다 보니 `세계의 지붕`이라는 별명을 붙인 이유를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파미르 고원 해발 3500-4700m에 하늘과 맞닿은 길이라고 하는 파미르 하이웨이가 있다. 키르기스스탄 오시(Osh)에서부터 타지키스탄 무르고프와 호루그를 지나 우즈베키스탄의 테르메스까지 잇는 약 1516㎞ 길이의 도로를 파미르 하이웨이라고 한다. 일부 구간은 해발 4655m에 있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고속도로이다. 필자의 경험으로 여름에 이 길을 가다 보면 사계절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다. 반팔 반바지로 출발을 했다가 가을의 날씨를 만나고 정상에서는 눈을 맞는다. 다시 지상으로 천천히 내려오면서 가을과 봄을 느낄 수 있다.

실크로드는 초원길, 사막길, 바닷길로 구분을 하는데, 파미르 하이웨이는 옛 실크로드 초원길의 일부이다. 사막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은 오아시스가 있는 장소이다. 오아시스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생존 본능이고, 이곳에 정착하게 되면서 정착민이 된다. 사막에서는 물 없이 쉽게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 실크로드의 사막 길은 정착민들이 살고 있는 오아시스와 오아시스를 잇는 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초원길은 사막길과는 달리 사람이 지속적으로 정착할 필요가 없다. 물과 식물이 풍부한 곳이 널려 있기 때문에 한 장소에서 생활을 하다가 부족한 것이 생기면 다른 장소로 옮기면 된다. 그래서 초원길에는 정착민보다는 우리가 흔히 노마드(Nomad)라고 하는 유목민이 많다. 그런 까닭에 파미르 하이웨이를 가다 보면 야크와 양, 말 등을 키우며 살아가는 유목민들을 도로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파미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파미르의 높이만 이야기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거친 땅에 살고 있는 순박하면서 강인한 유목민들이야 말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파미르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이 길에서는 유목민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길 위에선 이방인끼리도 반가운 법, 그 옛날 실크로드를 오갔던 대상들도 이 길 위에서 서로 반가웠을 것이다. 파미르 하이웨이는 타지키스탄을 동과 서로, 그리고 이웃 국가로 이어주는 중요한 길이자 무역로이다. 길은 인간의 생존과도 관련이 있다. 생존을 위해 옆 마을로 가는 길, 도시로 가는 길, 이웃 나라로 가는 길을 내다 보니 다양한 문명이 소통되는 길이 탄생한다. 과거 실크로드가 그랬듯이 지금의 파미르 하이웨이도 옛 실크로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단순한 길이 아닌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의 모티브를 제공해 주는 길이다. 우리가 살기 위해선 이 험난한 길을 가야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살 수 있고 살아가야만 한다는 강인한 상징성을 보여주는 길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의 목적이 문명세계에서든 파미르 하이웨이가 지나가는 오지에서든,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가 살기 위한 것이라면 이 파미르 하이웨이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의 목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 준다. 내 집과 일터,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과 환경 속에서 원활한 삶의 여정을 지탱해나가기 위해서 마음속에 내 스스로 길을 내고 평생을 가야 하는 어쩌면 파미르 하이웨이와 같은 실크로드를 닦아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는 먼 곳을 여행해야 한다고 한다. 그 답을 찾기 위해 파미르로 가볼 것을 추천한다. 김태진 배재대 러시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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