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가자!
나는 등나무가 잘린 교정의 아쉬움을 아도르노로 채웠다. 고통의 체험에 대한 부분을 읽던 중 탈출한 토끼들이 떠올랐다. 체험은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으며 외부세계에서 자신을 확인하는 것은 자만에 찬 즐거움일 뿐 진정한 체험은 아니란 것이다. 그럼에도 왜 토끼들은 그 잘못되고 부정적인 체험을 감행한 것일까. 그것은 사유가 체험된 고통을 치유하는 것과는 다른 지배 메커니즘의 문제인식에서 시작된다. 강자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참을 만했을지 모른다. 먹이를 줬기 때문이다. 지배나 문화산업이 고통의 체험이나 의식을 차단하지 않는다면 이런 부정적인 체험 속에서 인식의 기회가 제공된다. 토끼들의 의식은 열려 있었고 향기롭던 등나무꽃이 잘려 나가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아도르노는 천개의 눈을 갖는다는 브레히트의 명제와는 반대로 `획일성에 물들지 않는 사람`(Dissentierende)의 정확한 상상이 똑같은 붉은 안경을 쓴 천개의 눈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상상력의 주체는 토끼(입시제도 갇힌 지금의 아동으로 읽히길 바란다)였고 그 토끼는 탈출했으나 일주일만에 또 다른 아이들에게 발견되어 다시 학교 철창으로 향했다. 철창의 열쇠는 더 커졌고 주변은 더 단단한 무엇들로 막혔다. 하얀 꼬리토끼의 눈빛에 걱정이 한 가득이었다.
지난 주에 페이스북 CEO인 마크 저커버그가 이제 막 태어난 딸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당부하던 말은 이렇다. "어린 시절은 딱 한 번뿐이니 앞날에 대한 걱정은 너무 하지 말아라."
저커버그의 말에 공감하며 거기에 덧붙이고 싶다. 토끼들아, 철창 안에서라도 상상하라. 등나무가 없어도 향기를 맡을 수 있을지 모른다. 유하정 아동문학가
--------------------------------------------------------------
9-10월 동안 유하정 아동문학가, 서윤신 FCD댄스컴퍼니 대표, 최민혁 대전시립연정국악원 성악수석이 집필합니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