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가 정상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 구성원간의 신뢰와 믿음이 중요하다. 운전자의 경우 마주 오는 자동차가 중앙선을 넘어 본인에게 돌진해올 수도 있지만, 그러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으며 운전을 한다. 또한 고층의 엘리베이터가 예기치 못한 고장으로 인해 추락할 확률도 있지만, 우리는 엘리베이터의 안전성을 믿고 이용한다. 일상 속의 많은 행위가 서로간의 신뢰와 믿음을 전제로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원자력발전소의 경우 예외로 취급되어 높디높은 불신의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이 때문에 혹자는 전문가들의 그 어떤 과학적인 이야기도 믿지 않고, 우리나라 원전에서 언젠가는 중대사고가 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례로 전 세계에서 운전된 442개의 상용 원자력발전소 중 총 6개 호기(미국 TMI 2호기, 구소련 체르노빌 1호기, 일본 후쿠시마 원전 4개 호기 등)의 원자력 사고를 근거로, 우리나라 원전 24기에서 사고가 날 확률이 약 30%(=6/442×100%×24)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논리로 하나의 가정을 해보자. 어느 해 북한에 극심한 가뭄이 들어 식량난으로 150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다. 북한 인구를 대략 2500만 명, 남한 인구를 5000만 명으로 추산했을 때 남북한을 합쳐 그해 한반도에서 아사자가 발생한 확률은 약 2%(=150/7500×100%)이다. 만약 이를 근거로 이듬해 남한 인구 중 2%인 100만 명이 굶어죽을 것이라고 예상한다면, 당연히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 된다.

원전은 정상적으로 운전 중일 때는 물론, 어떠한 사고의 경우에도 주민과 환경에 위해가 가지 않도록 설계부터 시공, 운전, 폐로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철저하게 국가 규제기관이 감시하고 있다. 또한 설계 과정에서 고려하지 않은 중대사고가 발생할 확률도 백만 년에 한번 일어날 정도로 희박하다. 다시 말해 원전이 60년 운전된다고 가정할 때 중대사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매우 희박한 확률로 우리나라 원전에서 중대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원전에는 방사능 물질이 원전 외부로 나가지 않도록, 그리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심층방어 개념이 갖춰져 있다. 다중의 방벽과 비상노심냉각장치, 비상디젤발전기 등 각종 사고방재 설비 등이 바로 그것이다. 게다가 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설계 오류뿐만 아니라, 기기의 오작동 및 운전원의 실수 등까지 고려해 각 안전 설비나 안전계통은 다중성, 다양성, 독립성을 갖추고 있다. 결론적으로 모든 공학 기술의 집합체로 발전을 거듭해 온 우리나라 원전이 중대사고로 인해 주민과 환경에 위해를 끼칠 가능성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1979년 일어난 미국의 TMI 원전 2호기 사고는 가압경수로의 안전성을 보여주는 역설적인 사례다. 이 사고의 경우 운전원의 실수로 노심이 녹아내리는 중대한 사고가 발생했지만, 튼튼한 격납건물로 인해 방사성 물질의 누출은 없었다. 또한 바로 옆의 TMI 1호기는 사고 이후에도 운전을 계속했고, 2009년에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안전성 심사를 통해 2034년까지 운전연장을 허가를 받아 운전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나라 원전은 격납건물을 가진 TMI 원전과 유사한 가압경수로와 가압중수로이다. 또한 TMI, 체르노빌,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을 계기로 다양한 안전장치를 한층 더 강화하고 주민과 환경 보호를 위한 비상 대책도 확대했다. 무엇보다 지난 40여 년간 우리나라 원전에서 단 한 번도 외부로 방사능 물질이 누출되는 심각한 사고가 없었다는 사실이 원전의 안전성을 더욱 보여준다.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력 기술력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안전`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제 원전 안전에 대해 무턱대고 불신하거나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이기보다, 서로의 믿음과 신뢰를 더욱 키워나가야 할 때다. 이기복 한국원자력연구원 소통협력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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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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