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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칼럼] 여생 보내고 싶은 집에서 노년을

2017-09-03기사 편집 2017-09-03 14:5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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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농사짓고 사는 부모님이 안타까워 도시에서 같이 살 것을 여쭤본 적이 있었다. 다들 경험한 적이 있겠지만 부모님에게 돌아온 답은 "아니다. 여기서 사는 것이 더 좋구나"였다. 그 당시에는 아파트보다 단독주택이 더 익숙하고 도시보다는 소일거리 많은 농촌이 더 좋아 그러시는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 도심 아파트촌에 사시는 어르신들께 비슷한 질문을 해 보았다. 되돌아온 답은 거의 같은 말씀이다. 새로 지은 아파트도 좋지만 낡고 오래되었다 하더라도 지금 살고 있는 여기가 더 좋다 하신다.

그런데 좋다는 여기가 농촌 단독주택이기도 하고 도심의 아파트이기도 하여 무슨 뜻인지 하고 의문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답은 간단하다. 지금 살고 있는 내 집, 이 집이 바로 노후를 보낼 최적의 장소인 것이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있다. 집이 최고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젊은 우리도 내 집이 제일 좋듯이 어르신들도 집에 있을 때 몸과 맘이 가장 편하다. 그래서 가장 편안한 내 집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은 것이다. 물론 집은 집 자체를 넘어 집 안의 공기, 환경, 이웃 등 낱낱이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손에 익숙한 집기, 집 떠난 자식들 냄새, 눈만 봐도 통하는 이웃, 눈감고도 갈 수 있는 골목길 같은 그런 것 들이다.

얼마 전 한국주택금융공사에서 일반 노인, 즉, 주택연금을 이용하지 않는 노인을 대상으로 하여 사별을 전제로 여생 동안 살고 싶은 곳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조사 결과 80%를 훨씬 넘는 노인이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응답했다.

내 집에서 여생을 마치고 싶다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이러한 현상은 인종, 성별, 지역, 시대, 빈부를 뛰어넘어 지구촌 곳곳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어쩌면 말 못하는 동물도 우리와 같을지 모른다. 여우도 죽을 때가 되면 자기 머리를 태어난 곳을 향해 둔다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말도 있지 않는가.

학문적 결론도 벗어남이 없다. 서구사회는 일찍이 고령사회에 진입한 관계로 노인에 관한 학문인 '노년학'이란 학문이 발달되어 있고 노인에 관한 연구도 많다. 노년학에서 행복한 노후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AIP(Aging In Place) 즉, 내 집에서 늙어가는 것이 행복한 노년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전 세계 모든 어르신의 소망이 이러한대 우리의 현실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지금 우리의 많은 어르신들이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때가 되면 불편하고 낯선 공간으로 옮기고 또 그 곳에서 여생을 맞고 있다. 내 살던 곳을 떠나 낯설고 열악한 동네로, 자식 집에 얹혀서, 시설로, 병원으로 거처를 옮긴다. 사연도 가지가지. 생활비가 없어서, 자식에게 상속으로, 불편한 거동 등이다.

내 집에 살고 싶어도 집이 낡고 불편해진다. 찬바람이 들어오고 물이 샌다. 문턱에 자주 걸리고 화장실 욕조가 높아 몸을 담글 수 없다. 낡은 곳을 수선하고 노령친화적으로 집을 바꾸어야 한다. 중병의 시작이 낙상에서 많이 오므로 문턱을 없애고, 이동용 막대 봉을 벽에 설치하고, 개폐식 욕조로 바꾸어 안전사고를 막아야 한다.

내 집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은 소망은 주택연금과 만날 때 꿈이 이루어진다. 정든 내 집을 떠나지 않고도 연금을 받으면서 평생 내 집에서 사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집 수선이나 노령친화적 개조도 연금 일부를 일시지급 형태로 남겨 해결할 수 있다. 수명연장과 고령화 시대, 이제 주택연금은 행복 노년의 필수항목이 되어가고 있다. 배덕수 한국주택금융공사 서남권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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