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삶의 궤도는 안정권에 있으며,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순조롭게 다가서고 있는가. 배가 안전한 항해를 위해서는 바다의 상황이 자세하게 표시된 해도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선장의 판단력과 항해술이 중요하다.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인류가 순조롭고 영속적인 삶을 위해서는 의식주와 같은 기본적인 요건들 말고도 규칙과 약속, 지식과 학문, 문화와 예술, 과학과 종교, 군대 등이 필요하다. 이러한 요건들에 유능한 지도자만 받쳐준다면 우리들의 삶은 더욱 풍성해지고 질서 있게 된다. 흔히 지도자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으로 일에 대한 열정, 책임감, 균형감을 꼽는다. 그런데 만일 열정만 살아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헬리오스의 아들 파에톤이 일으킨 사건을 상기해보자.

헬리오스의 아들 파에톤은 혼외자식으로 어머니 손에서 양육된다. 친구들로부터 아버지가 없다고 놀림 당하자, 태양마차를 모는 이가 아버지라는 사실을 어머니로부터 듣게 되고,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청년으로 성장하여 찾아온 아들에게 그동안에 소홀했던 점에 미안함을 느낀 헬리오스는 스틱스 강을 두고 맹세를 하며 아들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한다. 파에톤은 자신이 진정한 태양신의 아들임을 입증하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아버지에게 태양마차를 몰게 해달라고 졸라댄다. 스틱스 강을 두고 한 맹세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신들 간에 약속에 따라 결국 헬리오스는 태양마차를 아들 파에톤에게 넘겨주면서 `하늘과 땅에 따뜻한 빛을 고루 나누어주려면, 마차의 고도를 무리하게 높이지도 낮추지도 말 것`을 당부한다. 입에서 불을 뿜는 네 마리의 말이 끄는 태양마차를 신나게 몰며 하늘높이 치닫던 파에톤은 운전미숙으로 정상 궤도를 벗어나게 된다. 이사고로 북아프리카는 불태워져 사막으로 변하게 된다. 파에톤이 야기한 사고는 열정은 있으되 만용이 부른 참사다. 그 사고 이후 헬리오스가 태양마차 모는 일을 다른 이에게 맡긴 적도 제 궤도를 벗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 혹독한 대가를 치루고 얻은 교훈이다.

인류사회를 위한 헌신을 주지시킨 괴테의 `파우스트`는 파우스트박사가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파는 계약을 맺었지만 결말에 가서 절명한 파우스트의 영혼은 메피스토펠레스의 손에 넘어가지 않고 천상의 합창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신의 구원을 받는 것으로 끝이 난다. 현실세상에서도 과연 이러한 극적인 구원이 가능할까. 고대 그리스 비극에는 인간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종결 짓기 위해 극의 클라이맥스에 초자연적인 `기계 신(deus ex machina)`을 등장시켰다. 괴테 또한 파우스트를 구원할 도구로써 이 장치를 사용했던 것이다. 탈출구를 찾을 수 없었던 비운의 주인공이 기계 신에 이끌리어 천상으로 올라가고, 여운이 남은 무대를 바라보며 관객은 도덕적 정화와 함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비극적 상황에 직면한 주인공을 구원할 기계 신 같은 장치는 없다. 현실은 참으로 냉혹하다. 그 모든 역경은 비극을 자초한 주인공이 감내해야 한다.

비극적인 상황들은 개인을 넘어 사회와 국가에도 생겨날 수 있다. 구성원 개개인의 역할과 능력도 중요하지만 지도자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크게는 국가에서부터 작은 동아리에 이르기까지 지도자들이 없는 조직은 없다. 그들의 역할에 따라 국가의 품격이 오르내리며, 조직이 흔들리기도 하고, 동아리가 와해되기도 하고 활성화되기도 한다. 지도자들의 균형감과 가치판단은 중용의 길과 맥이 닿는다. 그들의 극단적인 생각은 공존이 아니라 파멸을 야기할 수 있다. 반전 사상가 묵자도 전쟁을 통한 부국강병은 결국 패망의 지름길임을 역설했으며, 천하를 통일했던 진나라도 14년을 못 넘기고 패망하였음을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지도자들은 성찰해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온 나라가 초토화되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폐허뿐이다. 지도자들은 과거의 역사적 사례, 현실의 상황, 국익에 부합하는 것이 무엇인지 톱아 보고 가치판단을 해야 한다. 누구나 통합과 공존을 얘기하지만, 진정한 공존은 차이보다는 관계에 주목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도 헬리오스의 태양마차는 동쪽에서 떠올라 중용과 절제, 평화의 궤도를 달리며 하늘과 땅에 따뜻한 빛을 고루 나누어준다. 만용으로 그 궤도를 이탈했던 헬리오스의 아들 파에톤의 최후가 궁금하다면 찬찬히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어보길 권한다. 평화와 질서를 깨는 자에게 제우스의 번개는 무자비하다. 맹주완 아산문화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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