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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것들 위로 날아오르다

2017-08-31기사 편집 2017-08-31 15: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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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진 시네마 수프] 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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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키우면서 한번씩은 겪어보는 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만 '이럴 수가! 내 아이가 천재인가? 내가 천재를 낳았구나!' 하는 순간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내 아이의 나이를 앞서는 놀라운 행동, 앞선 발달에 대한 감탄에 어르신들이 이렇게 답하시는 것도 종종 보게 됩니다. "제 아이는 다 빨라 보이기 마련이다." 결국 아이들 부모들은 다들 거짓말쟁이가 된다고 하지요. 그런데 비록 착각이라 하더라도 자녀의 나이를 앞서는 발달, 혹은 귀한 재능에 대한 반응은 늘 흥분과 감탄으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오 이런, 내 아이가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것인가. 곤란하군.' 식의 공포나 부정의 반응을 보이는 경우는 드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렇게 천재를 좋아할까요? 왜 그렇게 감탄하고 동경하는 것일까요? 천재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깊게 생각해 본적이 있을까요? 그저 막연한 동경을 떠나서 말입니다. 천재의 삶이 과연 행복할까요? 물론 천재라 불리우는 다양한 경우들이 있어 '천재'라는 단어 하나로 각각의 천재라 불리우는 다양한 삶을 일반화 시켜 버리는 우문이긴 합니다.

영화 '댄서'는 한 천재의 삶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물론 1989년생인 주인공인 세르게이 폴루닌은 영화가 마무리 되는 2014년에는 이제 겨우 스물다섯이니 한 천재의 삶의 도입부를 보는 것이라는 표현이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시나 90년대에 유년시절을 보낸지라 당시를 보여주는 영상 소스가 당시 VHS나 베타 테이프로 녹화되었을 텐데도 지금보기에도 꽤 괜찮은 화면을 보여줍니다. 우크라이나의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세르게이 폴루닌은 이미 어린 시절 발레의 재능을 드러내고, 부모는 아들의 장래를 위해 도시의 발레학교로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그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할머니, 아버지를 포함한 가족들은 모두 뿔뿔이 타지로 흩어져 일을 하게 됩니다. 11세에 영국 로얄 발레 스쿨로 옮기는 과정에서 비자 문제로 어머니와마저도 떨어져 지내게 된 세르게인 폴루닌은,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끝가지 밀어붙이는 노력을 거듭합니다. 타고난 천재적 재능에 극한의 노력의 결합으로 세르게이 폴루닌은 열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영국 로열발레단의 최연소 수석무용수가 됩니다.

모든 발레댄서의 꿈이라고 볼 수 있는 권위 있는 발레단의 수석무용수가 된 세르게이 폴루닌은 빛나는 천재성으로 인해 그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는 2년을 기다려야 할 정도의 대중적 인기마저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부모의 이혼으로 자신을 위해 희생한 가족들을 다시 모으겠다는 간절한 소망이 사라지는 충격과 함께, 잃어버린 유년과 돌아갈 가족의 부재 등으로 방황하게 됩니다. 마약·문신 등의 구설수로 보수적인 클래식 발레계에서 악동으로 불리우면서도 미디어와 관객의 사랑과 집중은 더 커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수석무용수의 삶에 염증을 느끼게 되고, 아직도 무용수로서 창창한 나이인 22세에 영국 로열발레단을 탈단하게 됩니다. 그의 극단적인 행동에 써늘해진 서구 발레계를 뒤로 하고 러시아로 건너가 다시 최고의 자리에 올라 무용수 생활을 하지만 그 의미와 목표를 잃은 예술가는 곧 모든 것에 싫증을 느낍니다. 하루도 거르지 못하고 춤을 추고자 하는 멈추지 못하는 욕구를 감옥에 갇힌 것과 같다고 말하는 천재무용수. 자신의 천재성과 그 천재성을 성장시켜온 자신의 대부분의 삶을 감옥으로 생각하는 그는 결국 아직도 젊은 스물다섯의 나이에 은퇴를 결심하게 됩니다.

영화 속에서 한 무용수가 발레 무용수의 삶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5-6세에 발레를 시작하여 전부를 바치고 20대 초반에 그 공부를 마치고 나면 결국 어린 시절은 이미 다 지나갔고 그들에게는 매일 같은 온몸의 근육의 한계까지 단련시키는 훈련들과 공연들의 연속인 발레 무용수로서의 삶이 남아있을 뿐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고 말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아이들의 놀 권리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합니다. 잃어버린 유년기, 빼앗긴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 소수의 천재들에게만 일어나는 슬픈 일이 아닌 것 같은 요즘입니다. 백년 전 아동을 혹독한 노동에서 보호하고 아이들의 권리를 찾아주어야 했던 때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엄마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온 지 채 백일도 안 된 아직 혼자 앉지도 못하는 아기들도 엄마의 출산휴가의 끝과 함께 하루에 아홉 시간 이상을 기관에 맡겨져야 하고, 고작 몇 개 안 되는 단어들로 이제 겨우 말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한 아이들이 그림으로 된 교재의 문제풀이를 시작하고, 이후에도 이어지는 학교와 학원과 학습의 연속이 참으로 안쓰럽습니다. 아이들이 각각의 생각과 개성이 여물고 그 위에 삶의 방향과 목표를 세우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 건강하고 튼튼한 나무로 자라도록 행복한 유년시절이라는 토양을 다함께 고민해봐야 하겠습니다.

이현진 극동대 미디어영상제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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