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교통정책이 교통시설 확충이었다면 이제 교통문제의 해결은 시설이 아니라 시스템 관리로 접근해야 한다. 실제 보행환경개선의 노력은 도시 교통문제 및 환경문제의 완화와 해결에 기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교통정책의 패러다임이 자동차 통행 위주의 교통정책 마인드에서 보행자 입장으로 전환됐다는 점에서도 보행환경에 대한 개선과 보행권 확보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절실한 시점이다.

대부분의 도시들이 `걷기 편한 안전한 도시`를 위해 수많은 정책 사업들이 추진된다. 자동차위주의 정책방향들이 이제야 비로소 `사람`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도 곳곳에 길을 걷다 보면 무엇인가 발목에 걸려 아찔한 경험을 할 때가 많다. 이것은 바로 인도 주변 또는 보도블록에 설치돼 있는 일명 `볼라드`(bollard)라고 하는 `차량 진입 억제용 말뚝`이 그 주범이다.

`볼라드`는 `자동차가 인도(人道)에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차도와 인도 경계면에 세워 둔 구조물`이다. 일반적으로 무심코 지나치는 경우가 많아서 관심 밖의 대상이지만, 주위를 살펴보면 우리 주변이 온통 볼라드 천국이다. 대전은 물론이고 전국의 대도시라면 곳곳에 자동차의 진입을 막는다는 이유로 이 같은 `볼라드`를 설치했다. 일반적으로 쉽게 볼 수 있는 형태는 발목 높이의 화강석 콘크리트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이 볼라드가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차량의 인도 진입을 막는다는 목적으로 설치됐지만 규정에 맞지 않게 설치된 곳이 많아 오히려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시각장애인들이나 유모차를 동반한 시민들 등 교통약자에게는 이 볼라드가 `인도 위 지뢰`라고 불릴 만큼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보행자의 안전과 편리한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설치돼야 하는 볼라드가 거꾸로 보행자를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지역에서 필요이상의 많은 볼라드가 설치되면서 보행자는 물론 장애인들의 보행을 방해하고 있다. 더구나 볼라드의 모양과 재질 등도 제각각으로 설치되는 등 전반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대전시 자료에 따르면 대전에 설치된 볼라드는 총 1만 7500여 개로 이 가운데 38.4%인 6700여 개는 부적합한 것으로 조사됐다. 볼라드 4개 중 1개가 `불량`이란 뜻이다. 또 나머지 62%의 적합한 볼라드 역시 지나치게 많이 설치돼 있는 형국이다.

2012년에 개정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재료와 밝은 색의 반사도료 등을 사용해 쉽게 식별할 수 있어야 하며 보행자 안전을 고려해 높이 80-100㎝, 지름 10-20㎝ 크기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규정이 제정되기 전에 설치된 것들로, 그대로 잔존해 있어 보행자들을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가장 큰 문제가 보도의 정비 업무가 구청에서 관리하는 부분이라 일제히 정비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예산으로 현재까지 이르게 된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이에 대해 대전시는 `제1차 보행교통 개선 계획`을 수립해 안전한 보행공간 조성의 일환으로 부적합 볼라드 정비에 대한 전수조사를 거쳐 시에서 전면 정비한다는 계획을 마련했다.

대전시의 이러한 적극적인 교통정책 패러다임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동안 정책 키워드가 `자동차`였다면, 지금부터는 `보행자`, `안전`이 주된 교통정책의 키워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보행자가 안전하고 이동이 자유로우며 쾌적한 보행공간`을 위한 보행교통개선계획 과제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 위 지뢰`는 더 이상 무심코 지나쳐버릴 대상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민들을 위협하고 있다. 시민이 행복한 대전을 위한 것은 작은 관심에부터 시작된다. 이것이 곧 걷기 편하고 안전한 도시가 되는 지름길인 것이다. 걷고 싶은 도시를 구현하고 보행이 우선되는 사람중심 도시, 건강한 도시, 행복한 도시가 되면서 대중교통과의 연계 또한 자연스러운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김명수 한밭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대한교통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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