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천주교에서 벌어지는 운동, 일명 필사(筆寫)다. 성경을 통째로 베끼는 일이다. 신부님은 미사가 끝난 후에 성경을 필사한 신자들에게 상을 준다. 그러나 필사를 한 숫자는 미미하다. 기껏해야 한둘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성경을 통째로 베낀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천지창조에서 요한계시록까지의 거대한 분량을 베낀다는 것은 가시밭길을 해쳐온 예수의 행적만치 고달프다. 그래서 함부로 덤비지 못한다. 덤볐다 하면 대충 잡아도 몇 달 아니 몇 년이 걸린다. 필사는 예수를 닮아가는 일이고, 예수를 닮다 보면 이 풍진 세상을 착하게 살아야만 하는데 난 그럴 자신이 없었던 거다.

얼마 전 종영된 `도깨비`라는 드라마에 필사시집이 등장한 이후 필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시집은 팔리지 않아도 시인이 되려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생긴 일이다. 그런 현상 때문에 필사시집은 아직도 출판사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와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하루 일 곱 자루의 연필을 해치우면서 필사를 했고, 조정래 소설가·안도현 시인도 습작시절의 필사 경험이 있다. 특히 안도현은 필사의 느낌을 "손가락으로 고추장을 찍어 보는 맛"이라고 했고, 조정래는 "필사는 열독 중의 열독이다. 소설을 옮겨 쓰는 것은 백 번 읽는 것보다 나은 일이다" 하며 필사의 즐거움을 말했다.

신경숙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그녀가 쓴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에는 `필사(筆寫)로 보냈던 여름방학`이란 글이 실려 있다. 김승옥·이청준·윤흥길의 소설을 공책에 베껴 쓰면서 글쓰기의 기술을 익혔다. 그러다 결국 일본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을 표절해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생산적인 필사가 표절이란 부정적인 것으로 변할 수도 있으니 필사와 표절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나도 언제부터 좋은 글귀를 만나면 노트에 옮겨 적고 필사를 하는 버릇이 생겼다. 마음속으로 글을 읽는 것보다 몇 번씩 쓰다 보면 글귀를 외우기도 쉽고 오래도록 선명한 기억으로 남았다. 글쓰기를 위해서는 필사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

"유 선생 시는 읽을수록 참 좋아." 언젠가 친구 집에 들렀을 때 내 시집을 내놓으면서 그 친구가 내뱉은 말이다. 그가 펼쳐 놓은 내 시집을 보니 완전 걸레가 되었다. 마음에 드는 시구 밑엔 연필로 밑줄을 긋고 몇 번을 베껴 쓴 탓에 종이가 새까맣게 변하고 낱장이 너덜너덜해졌다. 그렇게 내 시집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그 친구는 지금은 알량한 시인 노릇을 하고 있지만. 유진택 시인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