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로 시작한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임시정부에 있다는 내용은 1987년 헌법 개정 때 삽입돼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보수정부가 집권하며 한동안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 했다. 임시정부와 법통을 끊고 광복절을 건국절로 표기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 건국절 논란에 마침표를 찍었다. 문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국민주권은 임시정부 수립을 통한 대한민국 건국의 이념이 됐고, 오늘 우리는 그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며 임시정부 수립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뿌리가 됐음을 명확히 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그 법통을 임시정부에 둔 것처럼 대한민국 국회는 그 정통성과 역사적 뿌리를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에 두고 있다. 1919년 4월 13일 임시의정원의 초대 의장으로 선임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탄생을 주선한 인물이 바로 이동녕(李東寧) 선생이다.

이동녕 선생은 1869년 지금의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서 출생했다. 1896년 독립협회에 가담하고 간사원으로 활약하며 근대민권운동과 국권수호운동을 전개했다. 민중들과 더불어 1898년 만민공동회운동에 참여해 개화·개혁운동을 전개하다가 옥고도 치렀다. 1910년 이회영, 장유순 선생과 함께 신흥무관학교의 모체가 된 신흥강습소를 설립했다. 임시의정원 초대 의장을 지낸 뒤 20여 년 동안 통합임시정부 내무총장에 이어 국무총리와 대통령 대리·국무령·주석 등을 역임하면서 임시정부를 이끌었다.

국회는 대한민국 국회가 임시의정원을 계승한 점을 상징하기 위해 1996년 국회의사당 본청 현관에 초대 임시의정원 의장인 이동녕 선생의 흉상을 건립했다. 국회는 대한민국 국회 초대 의장인 이승만 박사와 제2대 국회의장 신익희 선생의 전신상 동상도 2000년 같은 공간에 세웠다. 의미는 좋았지만 오해도 낳았다. 이동녕 선생의 업적이 훌륭함에도 다른 전신상에 비해 규모가 차이 나는 흉상으로 건립돼 임시의정원의 역사적 위상이 과소평가됐다는 지적이 대내외에서 나왔다.

양승조(천안병) 국회의원은 최근 국회의원 300명 전원에게 친전으로 이동녕 선생 새 동상 건립 협조 요청을 보냈다. 30인 이상이 찬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이동녕 선생 및 임시의정원의 위상에 걸 맞는 새 동상 건립이 필요하다.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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