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6년 아버지 태조 이성계의 부인이자 정적인 신덕왕후의 사후, 정도전이 사병 해체를 시도하자 이방원과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이방원은 정도전 일파를 기습 살해하고, 세자 방석도 폐위한 후 귀양보냈다가 죽여버렸다. 이 사건 후 태조의 차자인 방과가 세자 책봉을 거쳐 왕위에 올랐지만 실권은 이미 이방원에게 옮겨가 있었다.

이방원의 에니어그램 성격유형은 8번이며 별칭은 `도전자`이다. 그의 성격특성은 `욕망`과 `소유`((Possession)라는 격정으로 규정된다. 이 유형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이들에게는 강한 반사회적 성향이 있다. 도발적인 사람들로 자신의 가치가 사회적 규범과 다르다고 직설적으로 말하며, 저항을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나쁘게 보이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관습에 맞서는 것은 자존심이다. 이들의 격정을 소유라 함은 상황을 장악하고 그 중심에 서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람의 마음을 잘 빼앗으며 카리스마적이다.

1367년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난 이방원은 고려 우왕 9년(1383년), 집안에서 최초로 과거에 급제하였다. 변방 무가(武家) 출신이라는 콤플렉스를 갖고 있던 이성계는 이때 `대궐 뜰에서 절하고 사례하여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고 전할 정도로 기뻐했다. 신덕왕후도 이방원의 글 읽는 소리를 듣고는 `왜 내게서 나오지 않았을까`라고 한탄했다고 전하지만, 스물여섯 살의 장년인 그는 열한 살 이복동생에게 밀려났다(이덕일, 2010). 이방원은 8번 유형답게 극렬히 반발했다.

고려 말 기존 권력을 대체하는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과정에서 주체는 이성계였지만 고비마다 돌파구를 열고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이방원의 냉철한 결단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가치를 주장함에 있어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성계의 역성혁명에는 정도전이 지향하는 성리학적 이념에 바탕을 둔 왕도정치의 실현이 명분이고 가치였다. 새 왕조를 주창하는 과정에서 정도전이 가치와 명분을 선점하고 향후 정권의 향방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이성계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이방원의 입장은 달랐다. 이성계는 정도전을 동반자 내지는 단순한 조력자로 인식하였지만, 이방원에게는 정도전이 이성계를 매개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주체로 보였다. 상황의 중심에 서고자 하는 이방원이 수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두 사람은 강하게 부딪쳤고 이방원은 격정의 흐름인 소유에 충실하였다.

8번 유형은 열정적, 도전적인 에너지와 전략적 판단에 기초한 추진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역설적으로 장점으로 인하여 종종 상대방의 오해를 야기하기도 한다. 즉 일방적인 지시, 공감을 이끌어 내기 위한 설득 과정의 생략, 지나친 통제·요구 사항 등으로 상대방에게는 이들의 행동이 거칠게 느껴지고 반발을 초래할 수 있다. 이 반발에 대하여 이들은 복수심에 휩싸이는 악순환을 보이기도 한다.

8번 유형에게는 성찰을 통하여 격정인 욕망을 미덕인 천진함으로 변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상진 대전시민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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