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음악은 어디서 듣냐고 물어보면 열의 아홉은 휴대전화와 컴퓨터로 듣는다고 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신혼부부의 혼수품에 오디오가 포함되었고 국산 피아노 판매점 앞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러나 오디오와 피아노관련 업체는 자취를 감췄다. 정신적 행복보다는 생활의 편리함과 외부에 과시하기 좋은 자동차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고 본다. 경제적으로 윤택해졌으되, 음악을 듣는 방법과 시간은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그리고 `LP`로 대변되는 `아날로그` 음악 감상은 `MP3`와 유튜브를 통한 `디지털` 음악 감상으로 돌아섰다.

LP는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가청 주파수를 대부분 커버한다. 반면 CD는 위·아래를 깎아내 음의 손실이 심하다. MP3는 CD보다 훨씬 용량을 줄여 음악을 왜곡시킨다. 우리 청소년들은 이러한 디지털음악을 휴대전화에 연결된 이어폰을 통해 반복해 듣는다. 학교 음악시간조차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로 음악을 들려준다. 어른들이 집에서 음악을 듣지 않으니, 실연은 고사하고 과거 오디오 스피커로 나오는 부드럽고 은은한 음악은 존재조차 모르고 커간다.

한 지상파 방송에서 `디지털 음악의 경고`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한 적이 있다. 디지털음악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과학적인 접근을 했는데 충격적인 것은 태아에게 LP, CD, MP3를 들려주는 실험이었다. MP3로 댄스음악을 듣고 있는 태아는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평소에도 TV, 자동차 등 온갖 종류의 소음에 노출된 태아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음악을 느끼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소위 `모차르트 이펙트`라고 불리는 태교음악 또한 어른의 상술에 기인한 것이다. 프랑스 혁명 전, 사회의 부조리에 분기탱천했던 모차르트는 혁명가였다. 당시 `죽음의 조성`이라고 불리며 아무도 쓰지 않았던 G단조를 교향곡에 처음 가져다 썼다. 분노와 광기, 파격적 음악어법은 모차르트 음악에 자주 나타난다. 무조건 모차르트가 태교에 좋은 것이 아니다. 반드시 가려서 들어야 한다. 클래식음악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 육조시대 문인 유협의 문심조룡 26장 `신사`(神思) 편에는 `사람이란, 그 몸이 강이나 바다 주위에 있어도 그 마음은 궁궐의 대문 아래에 머무른다`로 시작한다. 정신세계의 중요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물질은 우리의 기본 삶을 구속한다. 하지만 정신은 천년의 시간을 거스르고 만리(萬里)를 꿰뚫는다. 클라라하우스에서 매달 열리는 LP감상회는 전국에서 온 애호가로 붐빈다. 아직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어른이 먼저 인문학을 느껴야 아이들도 느낀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전한다 해도 예술의 창작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다. 끝으로 지휘자 스토코프스키의 외침으로 글을 맺는다. `음악, 그 지고의 발돋움은 인간 그 자체의 핵심과 정수에 접해져 있다.` 유혁준 음악살롱 클라라하우스 대표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