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에 대한 세종시민들의 첫 인상은 무척 좋았다.

그는 지난 6월 21일 세종으로 주민등록을 옮긴 뒤 곧바로 지역주민들을 만나 소통하는 모습을 가졌다. 일주일 가운데 4일을 세종시에서, 3일을 서울에서 근무하는 `4대 3 원칙`을 지키겠다는 말은 신선했다. 이는 과거의 총리들과는 달리 서울보다는 정부세종청사가 위치한 세종 중심의 정부운영을 시사한 것으로 받아 들여졌다. 로컬푸드 직매장을 방문하고 세종의 벤처기업을 찾아 현장의 의견을 청취하기도 했다. 농산물과 로컬푸드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은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처럼 친근하게 세종시민에게 다가왔던 이 총리가 던진 말 한마디가 충청권 민심을 온통 흔들어 놓고 있다. 그는 며칠 전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해 "다수의 국민이 동의를 해주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을 남겼다.

세종중심의 정부운영을 시사했던 총리가 이런 말을 하다니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 이 총리는 논란이 확산되자 `민심의 동향`을 말했으며 수도이전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표명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뒤늦게 한발 물러서는 듯한 말을 했지만 그의 일성(一聲)은 큰 회오리가 되어 세종시민들의 귓전을 때리고 있다.

도대체 총리가 말하는 민심(民心)의 근거는 무엇이란 말인가. 총리의 개인적 생각인지, 주변 전문가들의 의견인지, 아니면 문재인 정부의 구상인지 알 길이 없다. 그가 직접 행정수도 민심 탐방에 나선 것도 아닐텐데 민심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게 수도권만의 민심인지, 전국적인 민심의 동향을 말한 것인지도 구분이 안 간다. 결국 확인되지도 않은 민심을 전체의 의견인 양 호도하는 모양새가 됐다. 여론 왜곡이 될 수 있고,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여론 조작이 될 수도 있다. 어찌 보면 이 총리의 말 한 마디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수천 수만 개의 댓글보다 더 파장이 크다.

이 총리가 말하는 민심은 얼마 전 국회의장실이 발표한 여론조사와도 완전히 다르다. 당시 조사에서는 전문가의 3분의 2, 일반 국민의 절반이 청와대와 국회를 세종시로 이전하는데 찬성했다. 그의 발언이 민심의 동향을 말한 것인지, 앞으로 민심은 이런 쪽으로 흘러가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 총리의 발언은 시기적으로 국회 개헌특위에서 행정수도에 관한 개념을 포함해 개헌 방향을 논의하고 있는 중차대한 때에 나온 것이어서 더더욱 석연치 않다. 자신의 발언이 경우에 따라서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사실을 과연 몰랐을까. 차라리 단순 말 실수였으면 좋겠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언론인 출신으로 4선 국회의원과 전남지사까지 지낸 커리어를 보더라도 절대 말 실수는 아닌 듯 같다.

그가 말한 행간에는 뭔가 중요한 메시지가 들어 있지 않느냐는 의구심이 자꾸 든다. 아무리 언론 인터뷰 중에 나온 말이라고 하지만 고도의 계산된 수사(修辭)라는 이야기다. 민심을 빙자해 행정수도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슬쩍 흘리고, 여론의 동향을 살피는 수순일 지도 모른다. 나아가 현 정권이 행정수도에 대한 모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총리의 언중(言中)에는 현 정권의 `빅 픽쳐`가 숨어있다는 말도 나온다. 정치적 계산과 수순에 의해 정치행정수도가 아닌 행정도시로 끝내려는 포석이라는 해석이다.

이 총리의 발언을 보면서 과거 이명박 정권에서의 `행정도시 수정안` 악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의 약속을 뒤엎고 2009년 9월 정운찬 총리 내정자를 내세워 수정안 추진을 발표했다. 당시 충청 민심은 이명박 정권을 용서하지 않고 응징했다. 주민들은 농사일을 팽개치고 거리로 나왔다. 세종시 수정안은 결국 2010년 6·2지방선거로 심판을 받았고, 추진동력을 상실하게 됐다.

이 총리의 발언이 묘하게도 과거 정 전총리의 발언과 오버랩 되는 것은 왜일까. 내년 개헌을 앞두고 무슨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은현탁 세종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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