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은 실로 방대해 하루 이틀 만에 다 둘러본다는 게 불가능하다. 앙코르와트로부터 1.5㎞ 떨어진 곳에는 12세기 건립 당시에 무려 100만 명이 거주한 크메르 왕국 도성의 옛 영화를 간직한 앙코르 톰(Angkor Thom)이 있다. 크메르 왕국의 역대 왕들과는 달리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자야바르만 7세는 고대 인도의 2대 서사시 중 하나인 라마야나에 등장하는 우주를 본떠 이 거대 도시를 세웠다.

이 도성 안의 수많은 건축물 중에는 자야바르만 7세의 모친을 향한 갸륵한 효심이 깃든 따 쁘롬 사원(수도원)의 유적이 돋보인다. 따 쁘롬 사원은 오랜 세월 정글 속에 방치된 탓인지, 거대한 나무뿌리가 사원 석조물 곳곳을 뚫고 칭칭 휘감아 흉측한 몰골을 드러낸 광경을 보노라면 실로 가공할 만한 대자연의 파괴력 앞에 온몸에 전율이 느껴진다. 인간이 이룬 휘황찬란한 업적도 대자연의 무한한 생명력 앞에서는 보잘 것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앙코르 톰 도성 중심부에는 사면불안(四面佛顔)의 석탑 54기(오늘날 남아 있는 것은 37기)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바이온(Bayon) 불교사원이 들어서 있다. 피라미드형 대사원인 중앙 불당의 높이는 45m에 이르고, 사면 석탑의 각 면에는 3-4.5m 높이의 온화하고 인자한 미소가 일품인 관세음보살상이 부조로 새겨져 있어 신비감을 더해준다. 모나리자의 미소 이상의 신비의 매력을 지닌 관음상의 미소는 잠시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자야바르만 7세가 통치하던 당시(12세기 후반과 13세기 초반)에는 왕권 신성을 주창하는 시바 힌두교 사상이 퇴조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인도 대승불교에 의존해 왕권을 강화하고자 이 바이온 사원을 지었다. 사실 앙코르 와트는 현란한 크메르 예술의 도입부에 해당된다면 바이온 불교사원은 당대 통치자의 강한 의지로 태어난 크메르 예술의 대미(大尾) 격이다.

이 사원 중앙에는 동쪽으로 입구를 둔 3층 첨탑이 들어서 있다. 원래부터 이 사원 주변에는 담장이 없었다.

참고로 이 사원을 제대로 관람하려면 시계방향으로 둘러보는 게 좋다. 특히 왕 생전에 미처 완성하지 못하고 그 후대에 이르러 마무리했다는 사원 1층 입구 벽면의 부조 조각품은 보면 볼수록 이목을 모으는 걸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부조는 앙코르 와트 회랑 벽면에 붙어 있는 것에 비하면 예술적 가치가 떨어지지만 승리의 행렬·시장 풍경·수렵 및 강변 활동 등 12-13세기 크메르인들의 화려한 일상생활이 마치 한 편의 이야기를 대하듯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 마음이 포근해진다.

앙코르 유적이 워낙 넓기 때문에 반띠아이 쓰레이(Banteay Srey) 사원은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빼놓고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씨엠립 동(東) 메본에서 북쪽으로 25㎞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이 사원은 1914년 프랑스 탐험대에 의해 발견됐지만, 10년 뒤에야 비로소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여자의 성(城)`이란 의미를 지닌 이 사원은 앙코르와트보다 200년 정도 앞서 축조된 시바에게 바쳐진 힌두교 사원이다.

벽면에 새겨진 조각들도 시바 신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황토 빛 사암으로 건조된 건축물의 현란한 조각이 매우 아름답다. 모든 벽면에는 비단에 무늬를 짜 넣은 것처럼 아름다운 조각상이 가득해 이를 둘러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전체 규모는 소박하지만 프랑스 건축가들은 반띠아이 쓰레이를 `귀중한 보물` 또는 `크메르 예술의 보물`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앙코르 유적군 내 다른 사원들의 미니어처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작고, 중앙 신전 앞의 문 크기도 매우 좁고 낮지만 그 매혹적 여운은 오랜 동안 지속된다. 신수근 자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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