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마단이 왔을 때

말은 뒷마당 말뚝에 고삐가 묶여 있었다.

곡마단 사람들이 밥 먹으러 갈 때도

말은 뒷마당에 묶여 있었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꼬리를 휘둘러 날것들을 쫓거나

조금씩 발을 옮겨 놓기도 하면서

하루 종일 묶여 있었다.

날이 저물고, 외등이 환하게 밝혀지고

트럼펫 소리가 울려 퍼질 때까지

말은 그냥 뒷마당에 묶여 있었다.

곡마단 곡예사가 와서 고삐를 풀면

곡예사에 끌려 무대에 올라갔는데

말 잔등에 거꾸로 선 곡예사를 태우고

좁은 무대를 도는 것이 말의 일이었다.

곡마단과 뒷마당 그리고 말 한 마리가 강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실제로는 완전 객체인 말을 시인은 시의 중앙으로 불러내 완전 주체로 묘사하고 있다. 그렇게 삶의 현장은 재편성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장터를 찾아다니는 주인의 지시에 따라 무대를 오르고 재주부리며 돌고 또 돌고. 그러다 장이 끝나면 또 뒷마당에 홀로 매어지는 말 한 마리. 그는 주인이 때맞추어 주는 한 됫박 밀기울이나 콩을 얻어먹으려 묵묵히 다음 장의 공연을 기다릴 것이다. 그는 밤에도 주저앉지 않고 오로지 곧은 다리로 서서 하늘의 별들을 궁금해 할지 모른다. 어둠의 정 중앙을 뚫어지라 응시하면서 눈망울을 이리저리 굴릴 것이다. 가을날에는 마당가에 서있는 오동나무 잎이 그의 등에 내려앉기도 하겠지. 찬바람 불면 그의 등에 싸락눈도 내리겠지.

그것을 일러 우리 인생이라고 말하면 너무 성급한 것일까. 아니면 너무나 우리 생을 낮게 평가하는 것일까. 그러나 돌아보면 너무도 그건 우리 생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변해도 말은 그저 자신에게 몰려드는 날것들을 꼬리 휘둘러 쫓으면서 거기 그렇게 매어 있다. 그렇게 인간들 모두 자신의 운명인 뒷마당 말뚝의 고삐에 매어 그것을 영영 벗어날 수 없으니 말이다. 김완하 시인·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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