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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칼럼] '징비록'을 다시 쓴다면

2017-08-16기사 편집 2017-08-16 18:4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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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가 1591년 일본의 정세를 보고받을 때 심사는 기가 막혔으리라. 통신사 정사(正使) 황윤길은 "필시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부사(副使) 김성일은 "그러한 징후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다른 소리를 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어떻게 생겼는지 묻는 질문에 황윤길은 "눈빛이 반짝반짝해 담과 지략이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김성일은 "그의 눈은 쥐와 같으니 족히 두려워할 위인이 못 된다"고 깎아내렸다. '징비록'과 '선조수정실록'은 "당파가 다른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썼다.

무지(無知) 또는 왜곡의 대가는 참혹했다. 조선은 침략 가능성을 애써 외면했고, 불과 1년 뒤 임진왜란이 터진다. 선조는 보름 만에 도성을 버리고 피란 가는 신세가 됐다. 7년 동안 계속된 전쟁은 명나라까지 참전하는 동북아 국제전으로 비화해 국토와 백성을 처참히 짓밟았다. 멀게는 문치주의에 치우쳐 부국강병을 소홀히 한 탓이었다. 사대교린(事大交隣)의 외교 정책 속에 "전쟁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맹신이 조야(朝野)를 휩쓴 데도 이유가 있었다. 오판에 국방·외교 무능력이 빚은 인재(人災)였다.

북 김정은의 '괌 포위 미사일 사격' 위협으로 촉발된 안보위기가 첩첩산중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에 이어 "내 말은 위협 아닌 진짜"라고 윽박질렀다. 말 폭탄 와중에 "미국놈들 좀 더 지켜보겠다"(김정은)거나 "북·미 대화 노력"(백악관 일부 참모) 같은 숨 고르기 양상이건만 속내는 오리무중이다. 미·중 사이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의 방아쇠를 당기자 중국은 "송곳니를 드러냈다"고 보복을 예고했다. 스타브리디스 나토 전 사령관의 "불행하게도 4-5일 전보다는 전쟁에 가까워졌다"는 발언이 예사롭지 않다. 우리 운명이 남의 손아귀에 들어간 형국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제 광복절 기념사에서 "모든 것 걸고 전쟁만은 막겠다"고 말한 건 당위적으로나 시기적으로 적절했다. 한반도에서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 동의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결기다.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대목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걸 역사가 보여준다. 희망이나 다짐대로 돌아가지 않는 게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일이다. 또 하나의 비극적 역사를 복기해 보자.

구한말 열강들은 한반도를 마당 삼아 땅 뺏기 싸움을 벌였다. 청과 일본은 조선 지배권을 놓고 황해 일대에서 맞붙었다. 한반도 주도권 잡기에 혈안이 된 러시아와 일본은 우리 주변 해역을 오가며 서로에게 포탄을 퍼부었다. 바로 러·일 전쟁이다. 그 직전 대한제국은 대외 중립을 선언했으니 이런 순진함은 세계사에서 찾아보기 드물다. 미·일은 가쓰라 태프트 밀약으로 필리핀과 한국에 대해 각각 식민지와 보호령이라는 이름의 통치에 합의한다. 무지와 오판, 국방·외교력 부재의 합작품으로 '코리아 패싱'(한국 배제)의 원조 격이다.

북핵 위기 앞에서 임진왜란을 떠올린다. 문 대통령은 '전쟁 방지'에 방점을 두되 대화 여지를 열어뒀다. '핵 포기하면 경협'이라든가 '군사 회담', '북의 평창올림픽 참가' 같은 제안이 그것이다. 평화 만능이라는 이상론으로 북핵 위기를 잠재울 수 있다는 믿음은 공허하고 불안하다. 북핵 해법을 찾는 '운전석'에 앉아 어디로, 어떻게 가겠다는 건 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해선 가야 할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다.

우려는 더 있다. 북핵을 머리에 인 채 진보와 보수가 두 갈래로 갈렸다. 그제 8·15 72주년을 맞아 촛불집회의 현장인 광화문에선 "한미동맹 철폐"가 메아리쳤다. 멀지 않은 대학로에선 "한미동맹 강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드를 놓고도 두 패로 쪼개졌다. 당파와 정파라고 다를 건 없다.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두 축은 이순신 장군의 수군과 더불어 의병으로 목숨을 던진 민초(民草)였다. 위기 보다 두려운 게 국론 분열이다. 유성룡이 '징비록'을 다시 쓴다면 대한민국의 오늘을 어떻게 기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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