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無知) 또는 왜곡의 대가는 참혹했다. 조선은 침략 가능성을 애써 외면했고, 불과 1년 뒤 임진왜란이 터진다. 선조는 보름 만에 도성을 버리고 피란 가는 신세가 됐다. 7년 동안 계속된 전쟁은 명나라까지 참전하는 동북아 국제전으로 비화해 국토와 백성을 처참히 짓밟았다. 멀게는 문치주의에 치우쳐 부국강병을 소홀히 한 탓이었다. 사대교린(事大交隣)의 외교 정책 속에 "전쟁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맹신이 조야(朝野)를 휩쓴 데도 이유가 있었다. 오판에 국방·외교 무능력이 빚은 인재(人災)였다.
북 김정은의 `괌 포위 미사일 사격` 위협으로 촉발된 안보위기가 첩첩산중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에 이어 "내 말은 위협 아닌 진짜"라고 윽박질렀다. 말 폭탄 와중에 "미국놈들 좀 더 지켜보겠다"(김정은)거나 "북·미 대화 노력"(백악관 일부 참모) 같은 숨 고르기 양상이건만 속내는 오리무중이다. 미·중 사이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의 방아쇠를 당기자 중국은 "송곳니를 드러냈다"고 보복을 예고했다. 스타브리디스 나토 전 사령관의 "불행하게도 4-5일 전보다는 전쟁에 가까워졌다"는 발언이 예사롭지 않다. 우리 운명이 남의 손아귀에 들어간 형국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제 광복절 기념사에서 "모든 것 걸고 전쟁만은 막겠다"고 말한 건 당위적으로나 시기적으로 적절했다. 한반도에서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 동의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결기다.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대목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걸 역사가 보여준다. 희망이나 다짐대로 돌아가지 않는 게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일이다. 또 하나의 비극적 역사를 복기해 보자.
구한말 열강들은 한반도를 마당 삼아 땅 뺏기 싸움을 벌였다. 청과 일본은 조선 지배권을 놓고 황해 일대에서 맞붙었다. 한반도 주도권 잡기에 혈안이 된 러시아와 일본은 우리 주변 해역을 오가며 서로에게 포탄을 퍼부었다. 바로 러·일 전쟁이다. 그 직전 대한제국은 대외 중립을 선언했으니 이런 순진함은 세계사에서 찾아보기 드물다. 미·일은 가쓰라 태프트 밀약으로 필리핀과 한국에 대해 각각 식민지와 보호령이라는 이름의 통치에 합의한다. 무지와 오판, 국방·외교력 부재의 합작품으로 `코리아 패싱`(한국 배제)의 원조 격이다.
북핵 위기 앞에서 임진왜란을 떠올린다. 문 대통령은 `전쟁 방지`에 방점을 두되 대화 여지를 열어뒀다. `핵 포기하면 경협`이라든가 `군사 회담`, `북의 평창올림픽 참가` 같은 제안이 그것이다. 평화 만능이라는 이상론으로 북핵 위기를 잠재울 수 있다는 믿음은 공허하고 불안하다. 북핵 해법을 찾는 `운전석`에 앉아 어디로, 어떻게 가겠다는 건 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해선 가야 할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다.
우려는 더 있다. 북핵을 머리에 인 채 진보와 보수가 두 갈래로 갈렸다. 그제 8·15 72주년을 맞아 촛불집회의 현장인 광화문에선 "한미동맹 철폐"가 메아리쳤다. 멀지 않은 대학로에선 "한미동맹 강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드를 놓고도 두 패로 쪼개졌다. 당파와 정파라고 다를 건 없다.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두 축은 이순신 장군의 수군과 더불어 의병으로 목숨을 던진 민초(民草)였다. 위기 보다 두려운 게 국론 분열이다. 유성룡이 `징비록`을 다시 쓴다면 대한민국의 오늘을 어떻게 기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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