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시피 무용은 순수예술이자 기초예술이다. 따라서 정부의 무용제도 및 정책은 무용가의 생존을 좌우하고 무용사회의 생태계를 뒤흔들 정도로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무용계에 구현된 공적(公的) 제도 및 정책의 기원은 6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립무용단은 공적 제도화의 첫 산물로 손꼽힌다. 창단 이래 국립무용단은 민족문화의 정체성 구현에 기여했고, 무용의 예술적 진화를 통해 현대한국무용사의 지형변화를 이끌었다. 국립무용단이 속한 국립극장은 한국 공연예술의 메카이자 정신적 고향으로 지역을 초월해 상징적 공간으로 위상이 높다.

불행하게도 국립무용단의 최근 몇 년의 활동은 아쉬움이 없지 않다. 우선 예술감독의 장기 부재로 인해 파행적(?) 운영이 불가피했다. 공석 중인 예술감독 대신 테로 사리넨·호세 몽딸보 등 서양의 안무가 기용도 서슴지 않았다. 극장장의 선택은 혁신으로 포장되었고 언론의 찬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국립무용단이 고수해온 기존의 무용극적 전통은 파기되었고 예술적 정체성은 실종된 채 모호해졌다. 한국춤 어법으로 단련된 무용수들의 몸짓에 각인된 속 깊은 멋은 고유미가 상실된 채 적잖이 훼손되었다. 이런 현상은 공교롭게도 국립극장이 최고의 성공작으로 내세우는 `향연`에서 한층 두드러졌다. 2015년 12월 공연된 `향연`은 최순실 국정농단 절정기에 탄생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국립무용단이 최순실 국정농단과 블랙리스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이와 관련 국립무용단에 제기되는 의혹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향연`은 김종덕 전 장관의 지시에 의해 급조된 작품으로 알려진다. 특히, 약 6억 원에 이르는 작품제작비가 국립극장 자체 예산이 아닌, 민간단체 몫으로 책정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산실 예산으로 충당됐다는 점에서 공분(公憤)을 불러일으켰다.

또 하나는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선임을 둘러싼 의혹이다. 국립극장은 2년여 동안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공모를 진행했지만 적격자를 찾지 못하고 세월만 흘러갔다. 공모제를 고수하다가 갑자기 추천제로 전환하자 사람들은 무슨 꼼수가 있는 게 아닌가 의심했다. 차고 넘치는 실력의 소유자를 제치고 의외의 인물이 선임되자 무용계는 낙망(落望)해 했다. 더우기 공모제에 참가했다가 부적격 판정으로 탈락한 인물이 새 예술감독으로 낙점되자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된 게 아닌가 의혹이 제기됐다. `합리적 의심`과 `불편한 진실` 앞에 이제 정부는 명쾌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새 정부 출범을 견인한 촛불집회를 촉발한 요인 중 하나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다. 이른바 블랙리스트 트라우마 속에서 문화체육관광부는 현장과의 소통을 명분으로 장관 참석 하에 연속으로 정책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회차마다 세부 주제는 다르지만 적폐청산과 개혁이 화두다. 며칠 전 한 시인은 도종환 장관의 나이브한 언술과 업무스타일을 비판하면서, 보다 과감하게 문화계 적폐청산에 나서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나아가 이명박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이 박근혜 정부를 거쳐 임기를 이유로 새 정부에서도 자리를 지키는 것에 대해 성토했다.

공교롭게도 현 국립극장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임명되어 박근혜 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최장 임기 기록을 경신 중에 있다. 새 정부가 출범했다고 해서 기관장이 무조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엔 동의하기 어렵다. 대신 기관의 정체성과 그에 준한 기관장의 직무성과를 보다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극장장의 가장 큰 실책은 국립극장의 정체성과 지나친 상업주의와의 충돌 내지 불일치에 있다. 대중성을 가장한 상업주의에 관료들이 찬사를 보태고 일부 편파적인 언론이 비호하면서 극장장의 임기는 정권을 초월해 계속 연장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극장장 이외 대체할 인물이 없는 양 관료조직과 그 주변에 형성된 견고한 인적 카르텔이 동종업자가 되어 그를 위해 막강한 성(城)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청산해야 할 적폐는 바로 여기에 있다.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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