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백인우월주의로 뜨겁다. 미국 곳곳에서는 백인우월주의를 규탄하는 맞불 집회가 열리는 등 인종차별로 인한 갈등이 재현되고 있다. 심지어 한 백인우월주의자는 이들의 시위를 규탄하는 시위대를 향해 차량을 몰아 1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치는 테러를 저질렀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은 다양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인종차별적 구호 등을 외쳤다. 미국의 백인우월주의나 인종차별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흑백갈등이 이어져 온 것이다. 최근에는 흑인들은 물론 동양인 등에 대한 차별도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지도자들 역시 인종차별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미국인의 단합을 강조하고 있지만 인종적 편견과 증오는 쉽게 잦아지지 않고 있다.

일본 관동대지진 때는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대학살을 당해야 했다. 1923년 9월 1일 도쿄를 중심으로 한 관동지역에 진도 7.9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건물은 물론 도로가 붕괴됐고 곳곳에 화재가 발생해 10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최악의 지진이었다. 도시기능이 마비되면서 일본인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물과 식량이 부족해 민심이 요동쳤고 정부를 향한 불만은 더욱 쌓여갔다. 이런 불만은 자연스레 일본내 조선인들에게 향했고 각종 유언비어 등이 퍼지면서 조선인들을 폭동의 주범으로 만들었다. 이 같은 유언비어는 일본인들의 불만을 희석시키기 위한 일본 정부로부터 생산됐다. 민간인으로 구성된 자경단은 눈에 띄는 조선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자경단은 조선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일본가요를 부르게 하거나 조선인이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를 시켜 어눌하게 말하면 가차 없이 살해했다. 관동대지진 당시 살해당한 조선인은 6000명이나 됐다. 나라를 잃은 조선인들은 폭발 직전에 있던 자국민들을 위해 악성 유언비어를 퍼뜨린 일본 정부의 희생양이 됐다.

올해로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나 나라를 되찾은 지 72년이 흘렀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와 신사참배 등 일본은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있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제국주의의 부활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제의 핍박을 견뎌야 했던 우리 조상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다.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역사적 사실도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인상준 서울지사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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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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